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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행사

고 천세용 열사 21주기 추모제

○ 열사약력
- 1971년 5월 서울 출생
- 1990년 서울 동북고 졸업. 경원대학교 전산과(2부) 입학
- 1990년 3월 경원대힉교 민족사 연구회 ‘한얼’에서 활동
- 1991년 5월 3일 오후 3시경 강경대 치사 사건과 박승희, 김영균 동지등의 분신으로 규탄집회가 계속되었으나 투쟁에 참석하는 학생들이 줄어듬을 안타깝게 여기며 '강경대 학우 폭력살인 자행한 노태우 정권 타도를 위한 결의대회' 도중 국기게양대 난간에서 분신, 투신하여 운명
- 제 20차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심의위원회 인정자
동지는 어려운 집안사정으로 인해 낮에는 일용직 건설노동자, 세차장 등의 아르바이트를 해 등록금과 생활비를 마련하고 밤에는 야간강좌를 들으면서도 누구보다 적극적인 활동을 했다. 당시 동지는 강경대 치사사건과 박승희, 김영균 동지의 분신으로 전국적으로 규탄집회가 잇따르는 가운데서도 경원대 학생들이 축제와 체전 분위기에 들떠 집회에 참석하는 수가 점차 줄어가는 것을 안타깝게 여겼다. 동지는 이같이 어려운 학교 상황에서 학생들을 깨우쳐 일으킬 수 있는 방법들을 고민하게 되었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마지막 결론을 내렸다. ’91년 5월 3일, 동지는 ‘노태우 정권 퇴진을 위한 4만 학도 결의대회’가 시작되자 국기 게양대 난간에서 신나를 뿌리고 몸에 라이터를 갖다댄 뒤 “6천 경원대 단결 투쟁 노태우정권 타도하자”고 외치며 6m아래 바닥으로 뛰어내렸고 끝없는 민중 사랑을 온몸으로 보여주며 산화해갔다

행사 정보

일요일 2012-05-13
지도보기 마석 민족민주열사 묘역 지도에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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