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전망 38호
<기억과 전망> 여름호(통권 38호) 발간
-마을공동체의 젠더화된 돌봄, 베트남전쟁과 젠더 이데올로기 등 다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이사장 지선) 한국민주주의연구소는 반년간 학술지 <기억과 전망> 2018년 여름호(통권 38호)(한울출판사, 13,000원)를 발간했다. <기억과 전망>은 한국연구재단 등재지로, 이번 38호에는 총 5편의 논문과 1편의 회고록, 1편의 서평이 실렸다.
특집논문은 ‘여성과 민주주의’라는 주제로 두 편의 논문을 묶었다. 먼저 김영정(서울시 여성가족재단)의 논문 ‘마을공동체와 여성: 공공성과 젠더화된 돌봄의 딜레마’는 서울시에 위치한 3개 마을공동체를 중심으로 여성들의 활동 사례를 심층분석한다. 마을공동체 활동은 여성들을 친밀성에 기초한 공공성 확보에 기여하게 하고 지역사회의 주체로 성장시키지만, 여성들이 가정 내에서 맡고 있던 돌봄 담당자의 역할을 지역사회로 확장하고 고착시키기도 한다. 이 논문은 젠더화된 돌봄에 대한 성찰을 통해 마을공동체 사업을 재조직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진선(성공회대)의 논문 ‘대중매체에 표상된 베트남전쟁과 젠더 이데올로기: 1964~1973년 <선데이서울>, <여원>을 중심으로’는 당시의 대표적인 대중잡지에 나타난 베트남전쟁에 대한 기억과 표상을 통해 여성성/남성성의 이분법적 젠더이데올로기가 어떻게 재생산되었는지를 분석한다. 두 잡지는 한국여성을 ‘모성애’와 ‘현모양처’ 담론 속에 위치 짓고 한국군을 베트남여성의 ‘구원자’와 ‘보호자’로 이미지화함으로써 베트남파병을 정당화하고 있다. 이 논문은 50여 년 전 과거에 대한 분석이지만 오늘날의 여성혐오 담론과 표상, 그리고 그 이면에 놓인 지배구조에 대해 성찰해 보도록 한다.
일반 논문은 모두 세편이 실렸다. 먼저 지주형(경남대)의 논문 ‘유신체제 말기의 한미관계와 정치위기: 부마민주항쟁과 동상이몽의 정치사회학’은 1979년 부마항쟁의 발생을 미국의 이중적인 대한정책이라는 맥락 속에서 파악한다. 1979년 박정희 정권과 김영삼을 중심으로 한 반대세력 간의 정면충돌 이면에는, 주한미군 철수를 중단하고 박정희 정권을 승인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인권개선에 대한 지속적인 압박을 통해 반대세력이 강경노선을 취하도록 만든 미국의 이중적인 정책이 놓여있었다. 이 논문은 YH사건에서 부마항쟁, 유신정권의 붕괴로 이어지는 일련의 정치적 사태가 미국의 이중적 정책으로부터 비롯된 국내의 정치 갈등과 저항이 어우러진 결과물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영진(서강대)의 논문 ‘인민의 이미지를 붙잡기: 전후 일본의 민중사 연구를 중심으로’는 1960년대 일본의 민중사 연구들이 인민/민중(people)의 이미지를 포착하고자 했던 일련의 과정과 그 함의를 고착하고 있다. 당시 일본 민중사가들은 패전 이후 새로운 국가 건설의 신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100여 년 전 메이지 초기로 거슬러 올라가 당시의 인민의 이미지를 포착하고자 했는데 그것은 과거를 그대로 복원하기 위함이었다기보다 1960년대 당대인의 기억과 고통을 전유하고 그 당대적 의미를 찾기 위함이었다고 지적한다. 과거에 대한 복원작업이 한창인 오늘날 우리에게 이 논문은 과거에 대한 복원의 최종 지향점은 결국 현재에 놓여있음을 제언한다.
양동숙(한양대)의 논문 ‘히로시마현 조선인피폭자협의회의 결성과 원수폭 금지운동’은 1975년 최초의 재일조선인 원폭피해자 운동단체인 ‘조선인피폭자협의회(이하 조피협)’의 결성과 활동을 일본의 원수폭금지운동과 관련시켜 검토한다. 조선인피폭자들은 일본의 강한 배외주의 등의 고난과 역경을 딛고 독립적인 조선인만의 협의회를 결성하였을 뿐만 아니라 일본의 식민 지배와 전쟁 책임을 묻고 핵무기 폐기라는 평화운동을 포괄함으로써 세계시민으로서의 민주적 정체성과 연대를 지향하는 단체로까지 성장, 발전하게 된다. 이 논문은 재일조선인이 갖게 되는 고투의 역사가 오히려 상처와 피해의 치유를 넘어 보편적인 평화와 연대를 추구하도록 하는 원동력이 되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밖에도 김정남(전 청와대 수석) 선생이 직접 겪은 1987년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에 대한 회고, 2012년 출간된 이몬 버틀러의 <나쁜 민주주의>(북코리아, 2012)에 대한 이관후(서강대)의 서평 등 읽을거리가 풍성하다. 김정남 선생은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이 은폐, 조작되었음을 폭로한 핵심적인 인물 가운데 한명이다. 회고록에는 당시 이부영 선생이 박종철군 사건과 관련하여 감옥에서 썼던 편지글, 김정남이 작성하여 사제단에 전달됨으로써 은폐조작 폭로에 이르게 했던 원고의 원본이 함께 실려 사료적 가치가 크다. 이관후 씨는 <나쁜 민주주의> 서평을 통해 촛불 이후 대표제 민주주의와 관료 행정 시스템이라는 현실 속에서 산적한 정치적 현안들에 대한 실질적인 결정들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이 책이 제안하는 ‘현실주의자’의 관점이 요청된다고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