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호 민주인권기념관이 민주주의 교육의 새날을 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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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인권기념관 건립을 환영한다
우리 민주화 역사에서, 남영동 대공분실이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이곳은 바로 유신독재와 전두환 독재 시기 무자비한 국가폭력이 자행됐던,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가늠하기 어려운 고통을 받았던 바로 그 장소다. 아울러 죽음 같은 폭력에 맞서면서도 민주화를 향한 열정을 꺾지 않고 마침내 민주항쟁의 승리로 이어지는 도화선이 된 바로 그 현장이다.
민주인권기념관에서 무엇을 기억하고, 기념할 것인가
야만적 국가폭력과 숭고한 죽음의 장소로 재현되기보다, 기억하고 애도하며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공간으로 재현되면 좋겠다. 이를 위해서는 그 시기 행위자들을 두루 보여주는 방식이면 좋겠다. 박종철의 죽음에서 6월항쟁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뭇 사람들이 보여준 작은 용기들이 모여 거대한 물줄기를 만드는 과정이었다. 이 과정들이 형상화될 수 있을 때, 이곳은 숭고한 추모의 공간이 아니라 시민적 삶 속에서 민주주의와 인권, 시민적 참여를 생각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 교육장으로서 민주인권기념관
잊혀져서 안될 기억을 사회적 기억으로 만들기 위해, 민주화운동이 추구했던 가치를 더 폭넓게 공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어쩌면 더 중요한 부분은 학생이나 청년 세대를 향해 열려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 공간이 정식으로 출범하고 나면, 이들이 역시 가장 많이 이 곳을 찾을 것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기념보다는 교육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민주인권기념관이 맡아서 할 수 있는 교육 활동
교육팀이 구성되면, 가장 먼저 인권유린의 역사와 같이 아픈 과거를 학생들과 공유하는 활동이 갖는 어려움과 의미를 토론하는 데서 출발하면 좋겠다. 교사들이 지금의 남영동으로 학생들을 데리고 올 경우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쉽지 않다. 공간이 주는 압도적 힘 때문이다.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처럼 나이가 아래로 내려가면 더욱 그렇다. 그건 부모도 마찬가지여서, 자녀를 데리고 와서 “여기가 경찰 아저씨들이 사람을 잡아 고문하다 죽인 곳이야”라고만 설명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 공간이 교육적 기능을 충분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준비된 안내자가 교육적인 방식으로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미래를 상상하는 교육장이 되기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방식, 학생이나 청년들과 소통하는 방식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독립운동이든 민주화운동이든, 그것이 어떤 특별한 혹은 위대한 인물에 의해 이루어진 것인 양 인식하도록 하지 않았는지, 희생을 아파하고 추모하는 것이 아니라 은연 중에 감수해야 할 것으로 간주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민주화운동을 국가와 공동체를 위한 당위적 실천으로서가 아니라, 참가자 자신이 삶 속에서 직면했던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으로 재현하는 데 성공했는지도 돌아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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