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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전망 47호

기억과 전망 47호


기억과 전망 47호

책머리에(진태원)

다중 재난 시대에 을의 민주주의를 모색하며

한동안 겨울답지 않게 포근한 날씨가 지속되더니, “책머리 에” 원고를 쓰고 있는 요 며칠 겨울 한파가 전국을 덮치고 있 다. 매섭게 몰아치는 칼바람과 온 몸을 꽁꽁 얼어붙게 만드는 차가운 기온은 누구에게나 이겨내기 힘든 시련이지만, 특히 바깥 기온과 다를 바 없는 냉골과 같은 방에서 연신 하얀 입김 을 털어낼 수밖에 없는 독거 어르신들을 비롯한 사회적 약소 자들에게는 더욱 더 견뎌내기 어려운 고통이다.
더욱 우리의 몸과 마음을 얼어붙게 만드는 것은 우리나라 를 비롯한 세계 각 국에서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는 현상이 다. 2008년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 2010년 아랍의 봄, 2011 년 스페인 시위, 2016년 한국의 촛불시위, 2019년 홍콩 민주 화 시위 등과 같이 세계 전역에서 나타났던 인권과 평등을 요 구하는 대중의 민주화 운동은 어느덧 사그라지고, ‘우크라이 나 전쟁’(이것은 잠정적이고 논쟁적인 명칭일 뿐이다. 러시아는 전쟁이 라는 명칭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과 시진핑의 3연임, 미국의 인 도·태평양 전략으로 표출되는 신냉전의 어두운 그림자가 세 계 전역을 휘감고 있다.
요즘 언론과 정치권에서 ‘복합위기’라는 말이 자주 거론되고 있다. 올해 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에너지와 농산물 가격이 폭등하면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게 되었고, 이를 잡기 위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급격하게 금리 인상을 함에 따라 각 국 중앙은행도 연쇄적인 금리인상 대열에 합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결 과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전 세계적인 경제 침체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 으며, 여기에 더해 환율 인상, 금융 불안정, 부동산 가격 하락, 가계부채 문 제 등과 같은 다면적인 위험 요인들이 누적되고 있는 것이 곧 ‘복합위기’의 실체라고 할 수 있다.
‘복합위기’로 표현되는 이 문제들이 한국 경제와 사회에 적지 않은 부담 과 어려움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프랑스 철학 자 자크 랑시에르의 표현을 빌리면 이것은 ‘치안(police)’의 관점에서 이해 된 위기일 뿐이다. 치안에게는 기존 지배적 질서의 안정적인 재생산이 최 고의 목표이기 때문에, 이를 위협하는 요인들을 무차별적으로 위기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치안에게는 인플레이션이나 금융 불안정도 위기이지만 민주화 시위도 위기이고 세월호 참사도 위기다. 더욱이 치안이 위기라고 부르는 것들은 많은 경우 진정한 위기들을 은폐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실 로 언론과 정치권에서 ‘복합위기’라고 부르는 것에는 인류세(anthropocene) 내지 자본세(capitalocene)라는 명칭으로 표현되는 생태계 재난이나 3년여 의 시간 동안 진행되고 있는 코로나 팬데믹과 같은 보건 재난이 포함되어 있지 않으며,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이래 전 지구적으로 심화되고 있는 사 회적 불평등이나 세월호 참사 및 이태원 참사로 대표되는 사회적 재난들과 더불어, 비정규직 노동자들, 여성과 성적 소수자들, 장애인들, 이주자, 탈북민, 난민 등과 같은 사회적 약소자들이 직장에서, 일상에서 직면해 있 는 불안전 재난도 고려 대상이 되지 못한다. 더욱이 “제국적 생활양식”이 라는 개념으로 표현될 수 있는,1) 글로벌 남반구와 북반구 사이의 구조적 인 불평등 관계나 대중들의 자발적이고 창의적인 활동을 이용하여 대중들 의 사고와 감정, 행동에 대한 정밀한 통제를 수행하고 있는 플랫폼자본주 의 같이, 현재 인류가 직면해 있는 심각한 문명적 위기들도 이른바 ‘복합적 위기’로 간주되지 않는다. 하지만 주기적으로 반복되기 마련인 자본주의 경제의 불황보다는, 이러한 다중적이고 복합적인 재난들이야말로 인류의 안전과 행복, 평등과 자유를 기저에서 위협하는 진정한 위기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비판적 인문사회과학에서 주목해야 하는 진정한 위기는 치안이
명명하는 ‘복합위기’가 아니라 그것이 은폐하고 배제하는 다중적 재난들 이라고 할 수 있는데, 문제는 이러한 재난들은 누구에게나 명백하게 드러 나는 경험적이고 실증적인 사실들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들을 재난이자 위기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그것들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겪어야 하는 약 소자들, 곧 을(乙)들의 관점에서 문제를 이해하고 사고하려는 노력이 필요 하다.
6년 전 가을과 겨울 전국을 뒤덮은 촛불집회의 뜨거운 함성과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은 한국 민주주의의 새로운 장을 열어놓는 신기원 적인 사건으로 칭송받았다. 때로는 ‘촛불혁명’이나 ‘촛불시민혁명’으로 불 리면서 국민주권의 시대를 개막하는 사건, 세계 민주주의 역사에서도 유 례가 드문 혁명적 사건으로 예찬되었다. 하지만 불과 몇 년 사이에 촛불의 뜨거웠던 열기는 마치 신기루인 듯, 매섭게 몰아치는 차가운 칼바람에 흔 적을 찾기 어렵게 되었다. 촛불 민주주의가 이처럼 급격하게 위세가 꺾인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외부적 요인들에 앞서 내적인 한계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국민주권’을 내세운 촛불 민주주의는, ‘국민’이라는 기표에 내재하는 계급적 지배에 둔감했고, 여성 과 성적 소수자, 비국민 차별 등과 같은 각종 차별과 배제라는 문제에도 맹목적이었다. 더욱이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다중적이고 복합적인 재난들 을 감당하기에는 촛불 민주주의의 시야가 단편적이고 협소했다는 점을 인 정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이러한 한계를 넘어서 한국의 민주주의가 더 성숙한 진전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앞서 말한 바 있듯이, 다중적 재난들을 온 몸으로 겪고 있는 을들의 관점에서 민주주의를 사고하고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을의 민주주의만이 민주주의에 대한 진정으로 새로운 전 망을 열어놓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이번 호에 수록된 글들이 모두 사회적 약소자의 관
점에서 재난과 폭력, 장애, 청소년문학, 국제 연대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이번 호에는 4편의 논문이 심사를 거쳐 수록되었다. 특집 ‘기억과 용서’에 실린 두 편의 글은 전쟁과 폭력을 어떻게 기억하고 용서할 것인가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영진 선생은 끔찍한 국가폭력과 민간인 학살로 점철된 한국 현대사에 서 화해와 용서, 윤리는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화두를 다루기 위해 아우슈 비츠에서 자행된 학살에 관해 성찰했던 한나 아렌트와 프리모 레비의 작 업을 살피고 있다. 선생은 ‘악의 평범함’과 ‘회색지대’라는 두 사상가의 대 표적인 개념이 홀로코스트의 잔혹함에 대해 성찰할 수 있게 해주는 방법 적 중요성을 지니고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폭력의 가해자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 없음을 명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용서, 특히 집단적 용서 의 가능성이란 존재하지 않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되는데, 선생은 사이 몬 비젠탈, 장 아메리, 프리모 레비, 자크 데리다, 자우메 카브레 등과 같이 홀로코스트 이후 화해와 용서의 가능성을 탐구했던 작가들을 읽으면서 이 러한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결론에서 선생은 정치적 논리에 따라 작동 하기 쉬운 사면과 달리 진정한 용서는 기억의 의무, 곧 저질러진 악을 바 로 잡으려는 지속적인 노력과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려는 자세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김태인 선생은 미국과 일본 사이에 벌어졌던 아시아태평양 전쟁의 시작
이었던 하와이 진주만과 그 전쟁이 사실상 종결되었던 장소인 오키나와의 마부니언덕에 각각 세워진 전쟁에 관한 기념공간을 비교, 고찰하면서 전 쟁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선생은 하와이와 오 키나와의 공통점을, 두 곳이 미국과 일본에서 가장 군사화된 지역이며, 과 거에 존재하던 독립 왕국이 군사적 폭력으로 인해 붕괴한 곳이라는 점, 그 리고 선주민 집단들이 지역의 군사화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겪고 있는 이 들이라는 점을 꼽고 있다. 이처럼 과거에서부터 누적된 폭력과 오늘날의 군사화로 인한 첨예한 갈등의 장소로 남아 있는 하와이와 오키나와에 세 워진 전쟁 기념공간은 한편으로는 국민적 경계를 넘어선 초국적 애도와 화해의 표상을 강조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각 지역 안에서 확산되 는 군사화 및 그로 인한 현재적 갈등에 대해서는 외면하거나 소극적 태도 를 보인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선생은 진정한 의미의 초국적인 애도와 기억의 작업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현행 군사적 폭력화 과정에 대한 비 판이 선결 과제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특집의 두 논문이 을 중의 을이라고 할 수 있는 전쟁과 국가 폭력의 희 생자들을 기억하고 그러한 기억의 바탕 위에서 화해와 용서의 가능성을 찾아야 함을 일깨우고 있다면, 나머지 두 편의 논문은 현재 살아 있는 또 다른 을들에 관한 성찰을 제시해준다.
김경민 선생은 탈북민, 이주노동자, 난민 등과 같은 이들을 ‘경계인’으로 부르면서 이들을 다루는 아동청소년 문학의 성과와 한계를 살피고 있다. 선생은 인권에 관한 법과 제도를 개선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이지만, 인권 문제의 핵심은 사람들의 인권 감수성을 높이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타인 의 고통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감수성과 타인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 로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인권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핵심적인 조 건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권감수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문학을 비롯한 예술의 역할이 핵심적이며, 이는 아동청소년들에게는 더욱 더 그 렇다는 것이 이 논문의 문제의식이다. 이런 전제 위에서 선생은 경계인에 대한 아동청소년 문학의 성취로 경계인의 상황과 조건, 어려움을 소개하 고, 더 나아가 이들을 단지 관찰의 대상이 아닌 서사의 주인공으로 삼고있다는 점을 꼽고 있다. 그럼에도 여러 가지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인데, 선생에 따르면 이는 우리나라 다문화의 현실과 연동하는 것이다. 성장소 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역경을 극복하는 주인공에 관한 다소 상투적인 서 사들이 나타나고 주위의 조력자들이 경계인들이 처한 어려움을 힘들이지 않고 해결할 수 있도록 설정한 것은 경계인들이 현실에서 겪을 수 있는 곤 경에 대한 이해를 방해할 수 있는 것이다. 더욱이 성장의 주체가 경계인으 로 한정되어 있을 뿐, 국내 아동청소년의 성장이라는 문제와 연결되어 있 지 않다는 점도 또 다른 한계라고 선생은 지적한다. 이러한 한계를 넘어 설 때 경계인에 관한 아동청소년 문학은 낯선 이들과의 진정한 공존을 위 한 문화를 형성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선생의 결론이다.
다른 한편 이상직 선생은 2005년에 설립된 이래 국내의 탈시설운동을 주도해 온 인권운동단체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들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지난 20여 년 간 전개된 국내 장애인 탈시설 운동사를 정리하고 있다. 선생에 따르면 ‘발바닥행동’은 중중장애인을 중심으로 한 탈시설운 동의 의제를 당사자운동과 시설의 폐지로 설정함으로써 탈시설운동을 2010년대 장애인운동의 중심에 위치시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 다. 형제복지원 사건이 국가폭력의 또 다른 핵심으로 등장하고 탈시설지 원법 발의와 장애인 탈시설 로드맵이 발표되면서 탈시설운동은 전국적인 의제로 부각되고 정치적 제도화를 목전에 두게 되었다. 선생은 탈시설운 동은 ‘시설사회’에서 ‘돌봄사회’로의 역사적 전환을 이끄는 보편적인 의미 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사회운동 일반의 맥락에서도 중요한 시금석이 되 고 있다고 그 역사적 의의를 평가하고 있다.
이번 호에서 또 다른 유익한 글들은 지난 46호에 이어서 연속 게재된 “한국 민주주의와 국제 연대” 기획이다. 첫 번째 글에서 오타 오사무 선생 은 재일교포 양민기 선생의 주도로 1993년부터 시작되어 오늘날까지 지 속되고 있는 히가시쿠조 마당을 소개하고 있다. 일본에서 교포 2세로 태 어난 양민기 선생은 재일조선인으로서의 민족적 정체성을 깊이 자각하고 있었으며, 이러한 민족적 정체성을 압박과 빈곤 속에서도 자신들이 만들 고 유지해 온 것에 대한 뿌리 깊은 자긍심을 지니고 있던 민중의 삶과 문 화에서 찾으려고 했다. 선생은 마당극에서 민중문화의 탁월한 전범을 발 견했으며, 1980년대 초부터 한국의 마당극을 번역·소개하고 오사카의 이 쿠노민족문화제를 시작으로 마당극을 직접 연출함으로써 도쿄와 교토 등 지로 마당극이 확산되는 데 기여했다. 1993년부터는 교토 히가시쿠조의 지역축제인 히가시쿠조 마당을 개최하여, 조선 민족만의 마당이 아닌 재 일코리언과 일본인, 오키나와인, 중국인 및 동남아시아인과 중남미인이 함께 참여하는 초민족적인 문화적 교류의 장으로 승화시켰다는 것이 오사 무 선생의 평가다. 선생은 양민기 선생이 주도한 마당 운동의 의의를 “자 본주의에 의한 신자유주의적인 문화에 대항해 다문화의 공생을 목표로 하 는 대항문화운동, 혹은 ‘반자본주의적 커뮤니티 운동’이라는 측면”에서 찾 으면서 글을 맺고 있다.
다른 한 편 두 번째 글에서 헨리임 선생은 필리핀과 미국에서의 활동
을 바탕으로 한국 민주주의와 국제연대의 방향을 보여주고 있다. 선생은 젊은 시절 필리핀 마르코스 독재에 저항하는 필리핀 공산당 게릴라 조직 인 신인민군에 참여하여 10개월 간 ‘현장 체험’을 한 바 있으며, 이러한 경험을 통해 국제연대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신인민군 과 함께 생활하면서 대지주와 독점 자본이 결탁한 부패한 지배세력의 잔 혹한 통치 아래 필리핀을 비롯한 아시아의 수많은 민중이 고통을 겪고 있 음을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이다.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의 비 극을 전해 들으면서 생물학에서 동아시아학으로 전공을 바꾼 선생은 1986년~1987년까지 인천도시산업선교회에서 해외인턴십 프로그램을 이수하면서 6월 항쟁을 경험하게 되었다. 선생은 이러한 경험이 민족과 민주에 대한 생각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곧 미국에서 재미 교포의 사회운동은 민족이라는 기표 아래 한국의 역사적 주체의 일부로서 의 활동이라기보다는, 미국의 진보운동에 뿌리를 내린 민주주의 투쟁이 며, 이는 한국의 민주주의 운동과 국제 연대라는 틀로 결합되어야 하는 활 동이라는 자각이 그것이다. 이 두 편의 글은 을들에 기반을 둔 한국의 민 주주의 운동의 성패가 다른 나라의 또 다른 을들과의 연대에 달려 있음을 일깨워주고 있다.
주제서평에서 강진아 선생은 백영서 선생의 『중국 현대사를 만든 세 가
지 사건: 1919, 1949, 1989』에 관해 다루면서, 이 책들에 관해 기존에 제 시된 여러 서평들을 함께 검토하고 있다. 이를 통해 선생은 백영서 선생의 저작만이 아니라 지난 20여 년 간의 동아시아 담론의 현재적인 위상을 성 찰하고 있으며, 시진핑 3연임 이후의 중국의 역사적 위상을 어떻게 설정 해야 하는가 하는 화두를 제기하고 있다. 선생은 중국과 중국공산당을 분 리해서 사고하는 것이 주체적인 중국론과 동아시아론을 사고할 수 있는 선결 조건임을 역설하고 있다.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일하고 있는 정혁 선생은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화위’로 약칭)의 현황과 과제에 관한 글을 기고해 주었다. 선생은 1기 진화위의 노력을 통해 한국 은 이행기 정의 노력에서 선도적인 위치로 올라서게 되었다고 자평하면서 도 여전히 많은 과제를 안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특히 선생은 포괄적인 피해구제책의 마련을 통해 피해자 권리보장이 더 강화되어야 하며, 조사 위원회의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조사 활동의 투명성과 책임성, 실질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임을 강조하고 있다.
소중한 연구 성과와 귀한 원고를 보내주신 필자 선생님들께 깊은 감사 과 연대의 말씀을 드린다. 매서운 추위가 한 겨울 내내 몰아쳐도, 새로운 봄이 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어김없이 푸릇푸릇한 새싹이 추위를 밀어 내고 쑥쑥 자라 오른다.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현재 을들이 경험하고 있는 시련은 민주주의의 새로운 성장과 도약을 위한 거름이 될 것이라 믿 는다.

2022년 12월 편집위원회를 대표하여
진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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