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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전망 46호

기억과 전망 46호


기억과 전망 46호

책머리에(오창은)

경제 성장을 우선시하는 신자유주의와 전문가가 의사결정을 통제하는 관료주의는 현대 민주주의의 주적(主敵)이다. 신 자유주의와 관료주의는 인권과 생명 존중의 가치를 위협하고, 권력에 따르는 배타적 의사결정을 강화해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경제성장을 우선시하는 세계관에 매몰되다 보면, 개별 국가는 ‘세계시장 속에서 경쟁력 강화’를 위해 ‘인적·물적 자원’ 을 이윤 추구 위주로 배치하는 효율성을 중시하게 된다. 신자유주의는 관료제적 운영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관료주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질서를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의사결정을 하게 된다. 민주주의는 국가 자원의 효율적 배치와 충돌하고, 경쟁력 있는 엘리트주의적 시스템 운영과도 갈등한다. 무엇보다 국민의 에너지를 국가 중심으로 결집하는 ‘애국심’의 동원에 민주주의가 걸림돌로 작용하는 경우도 많다.
‘민주주의 과잉의 포퓰리즘’, ‘저급한 평등주의로서의 민주주의’, ‘비효율적이고 낭비적인 민주주의’라는 언어는 그렇게 유포되어 영향력 있는 담론이 되어간다.
현대 민주주의는 인류 공동체로서의 세계시민과 개별 국가의 애국적 주체로서 국민 사이의 갈등 해소가 중요한 과제다. 또한 서구 유럽 선진국과 제3세계, 과학기술 격차에 따른 국가 간 불균형, 지역 간 부의 격차와 빈곤 심화는 국가 간의 비민주적 위계를 확대 재생산한다.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처럼, 군사적 예외 상태인 상황에서는 전 지구적으로 평화가 위협을 받고, 공포심도 확산된다. ‘코로나19’ 팬데믹처럼 인류는 서로 연결되어 있는데도, 자국 중심의 방역 대응으로 인류 공통 감염병 문제 해결은 더디기만 했다. 기후변화와 전 지구적 생태 위기에 무력한 개별 국가 시스템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가장 암울한 그림자이기도 하다. 20세기에는 국가 간 전쟁이 국가들의 연합에 의한 전쟁으로 확산되었다면, 21세기에는 전쟁 발발 자체만으로도 전 지구적 위기 상황을 초래할 정도로 ‘세계화의 밀도’가 높아졌다. 강대국의 힘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비민주적 국제질서는 평화 유지 자체를 곤란하게 한다. 민주적으로 강화된 시민사회의 국제적 연대를 전제로 한 밑으로부터의 평화 체제의 구축이 ‘전 지구적 민중 생명권 수호’의 중요한 과제다.
서구 유럽 선진국과 제3세계 약소국의 과학기술적·정치적·문화적 격차로 인해 발생하는 빈곤 문제, 인간 역량의 불균등성을 심화하는 교육 기회의 박탈, 제3세계의 식량 문제, 기후 위기와 생태 환경의 변화가 인류의 현안 문제이다. ‘지구적 정의’는 개별 국가에 맡겨질 경우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다. 강대국, 다국적 자본, 초국적 기업 등의 무한 경쟁과 성장주의 담론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시민사회의 국제적 연대 네트워크 구축이 더욱 중요해졌다. 세계시민의 역량에 기반한 ‘민주주의의 세계화’는 개별 국가의 경쟁력 강화 담론에 맞서, 기후 위기에 대한 대응과 전 지구적 차원에서의 생태적 전환을 끌어낼 수 있는 희망의 거점이다. 세계 시민사회의 역량에 기반한 ‘지구적 정의’ 실현은 ‘국가주권 제한 운동’을 요청한다. ‘국가주권 제한 운동’은 개별 국가가 국익 추구를 위해 ‘지구적 정의’를 위협하는 의사결정을 했을 때, 시민단체들이 국제적으로 연대하여 개별 국가의 통치행위에 제한을 가하는 운동이다. 2022년 러시아에서 조직된 우크라이나 전쟁 반대 시위에 세계 시민사회가 호응한 것도 ‘국가주권 제한 운동’의 사례가 될 수 있다. 핵무기를 보유한 국가들이 주도하는 ‘핵 확산 금지’에 맞서는 ‘전 지구적 비핵화 운동’도 미래의 ‘국가주권 제한 운동’의 의제가 될 수 있다. 기후변화와 생태 위기에 대한 대응, 평화와 전쟁에 관한 사항, 완전 비핵화를 위해서는 국가를 초월하는 연대로 ‘미래의 비전’을 만들어야 한다. 이는 20세기적 자산의 21세기적 계승을 통해 실마리를 마련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세계화와 민주주의’, 그리고 ‘민주주의와 국제적 연대’라는 화두가 제기되었다.
『기억과 전망』 46호의 기획은 “한국 민주주의와 국제적 연대”이다. 한국민주주의연구소와 『기억과 전망』 편집위원회는 한국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이뤄진 국제적 연대 활동을 역사화하기 위한 기획을 준비했다. 이 기획은 일본, 미국, 독일 등에서 한국 민주화운동을 매개로 지역운동이 조직되고, 국제적 연대 활동이 전개되었던 역사를 성찰적 태도로 의미화하려는 취지로 마련되었다. 한국 사회는 1970~1980년대 민주화운동을 거치면서 국제 시민사회의 지원과 연대에서 큰 힘을 얻었다. 한국 민주화는 개별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세계화’를 향한 디딤돌이었다. 국제적 연대 활동에 대한 기록과 증언을 통해 한국민주화운동을 객관화하고, 연대 활동 참여 주체들의 경험과 고민을 적극적으로 기록하고 공유할 필요가 있다. 그 성과를 에세이와 역사적 증언 형태로 모아 『기억과 전망』에 수록할 수 있게 되었다. 게재된 글들은 모두 과거를 증언하면서, 현재를 성찰하게 하는 귀한 원고들이다.
이유재는 「이주민 인권운동에서 국제연대로, 그리고 다시 이주민 인권 운동으로」에서 독일 한인 이주민들의 투쟁의 역사를 기술한다. 이유재는 초등학교 5학년 때 파독 광부였던 아버지를 따라 베를린으로 이주했다. 그는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하면서,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와 성남 외국인 센터를 방문했을 때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한국 이주민들이 독일에서 받았던 차별보다 더 심한 차별이 이주 노동자들에게 행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유재는 독일로 귀환 후 젊은 한인 2세들과 ‘한가람’이라 는 단체를 만들었고, 이후 사단법인 코리엔테이션을 설립했다. 이 단체는 프로젝트를 통해 독일 다수 사회가 이주민에게 통합을 요구하는 것이 온당한가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다. 이유재는 이 글에서 “독일 한인이주자들의 사회운동은 인권운동으로 시작했다가 한국과의 연대운동에 집중했다가 주체가 2세로 바뀌면서 다시 독일사회 인권운동으로 변해갔다”고 했다. 그러면서 민주주의는 “매일같이 투쟁해서 쟁취되어야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이유재는 사회적 모순을 바꾸기 위한 민주주의 투쟁은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극복하는 연속적 과제임을 담담하게 밝히고 있다.
한정화의 「주변에서 중심으로: 한국의 탈식민주의 여성운동이 독일 사회에 끼치는 영향」은 ‘평화의 소녀상’이 베를린에서 설치되면서 발생한 사건들을 다각적으로 서술하고 있어 흥미롭다. 한정화는 한국에서 중학교 3학년을 졸업하고, 파독 간호사인 어머니를 따라 남부 독일로 이주했다. 튀 빙겐 대학과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공부하면서, ‘재유럽민족민주운동협의회’의 젊은 유학생들과 교류했다. 한정화는 사단법인 코리아협의회에서 활동하면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전문성을 확보하게 되었다고 했다. 2020년 9월 28일 평화의 소녀상이 베를린에 설치되었지만, 독일 미테 구청이 철거명령을 내리면서 ‘평화의 소녀상’ 문제가 독일 사회에서도 쟁점이 되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만이 유일한 제국이었지만, 유럽에서는 스페인, 포루투갈,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등 다양한 국가가 반식민주의 운동의 대상이 된다. 그렇기에 한국에서 반식민주의는 항상 반일본과 연결되면서 ‘민족주의’라는 비판에 직면한다는 지적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유럽에서도 수많은 여성들이 성폭력을 당했지만, 독일 사회는 이 문제에 대해 학교에서 전혀 교육을 하지 않으며 침묵하고 있다. 한정화는 독일과 유럽에서는 “피해자와 연대하고, 피해자의 권익을 위해 투쟁하는 정의연과 같은 여성단체”가 없었기에 데서 침묵이 이뤄졌다고 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한일관계로 국한시키려는 논의를 비판하면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연결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이 글은 큰 설득력을 갖고 있다.
서혁교의 「국제연대에서 지역사회 운동까지: 80년대부터 미국 한인사회의 풀뿌리 운동과 함께 한 경험」은 생애사에 대한 자기기술지이고, 재미 한국청년연합과 미주동포전국협회의 조직운동사이자, 미주 한인 사회의 역사와 연관되어 있는 기록물이기도 하다. 1960년생인 서혁교는 1971년 미국으로 건너가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공부했다. 그는 대학 재학시절 5·18로 인해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했다. 그 영향으로 1984년 동료들과 함께 재미한국청년연합을 결성하여 한국민주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조직적인 캠페인과 유엔 앞 단식시위 등의 활동을 전개했다. 서혁교의 에세이에서 인상적인 활동은 1989년 재미한청련의 ‘한반도의 평화와 자주통일을 위한 국제평화대행진’에 관한 기록이다. 재미한청련이 주도하여 북한 백두산에서 평화행진을 시작했고, 임수경이 평양에서 합류하여 판문점까지 함께 걷는 역사적 사건이 발행했다. 2008년 재미한국청년연합이 해산한 이후, 서혁교는 미주동포전국협회에서 활동하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 공론화 활동, 한국 촛불 시위 지지 활동, 세월호 희생자 추모 활동, 그리고 성소수자 옹호 활동 등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김광민의 「히가시쿠조(東九条) 마당, 지역으로부터의 도전: 재일코리안 3 세의 시선으로」는 히가시쿠조에 지역 축제가 만들어진 과정에 대한 흥미로운 보고다. 히가시쿠조는 JR교토역 남쪽에 위치해 있는 낙후된 지역으로 태평양전쟁 전에 재일동포들이 많이 유입되었다. 이곳은 불량주택지구 라고 불리는 곳이었는데, 카톨릭 신부 프란시스코 A. 디프리의 영향으로 지역공동체 구성의 발판이 마련되었다. 1980년대에 ‘히가시쿠조개선대책 위원회’가 결성되어 주택 문제를 포함한 지역문화 해결을 위한 운동이 활발해졌다. 김광민은 재일코리안 3세로 오사카 이쿠노구 출신이지만, 도지 샤 대학에 진학하면서 ‘하가시쿠조’ 지역과 인연을 맺었다. 그는 ‘희망의 집 가톨릭 보육원’에 근무하면서 1993년 제1회 ‘히가시쿠조 마당’ 조직에 참여했다. ‘히가시쿠조 마당’은 풍물놀이, 사물놀이, 마당극과 같은 공연을 하고, 사회문제를 테마로 한 전시회를 여는 성공적인 지역 축제이다. 올해로 30년째를 맞는 기념비적인 축제인 ‘히가시쿠조 마당’은 일본의 조선인에 대한 헤이트 스피치에 맞서며, 다문화공생 지역으로의 터전을 일궈나가는 지역축제로 자리 잡았다. 김광민은 ‘히가시쿠조 마당’이 “피차별 역 사”와 함께하는 공간이며 “동아시아의 평화를 바라는 축제”로서 강한 생명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30년째 이어져 온 지역문화운동의 감동적인 고투를 이 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독일, 미국, 일본에서 한국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했던 ‘시대의 양심들’이 현재는 전 지구적 보편성과 연결되어 있는 의제를 갖고 활동하고 있다. 해외에서 한국 민주화를 위해 연대했던 특별한 역사를 이유재, 한정화, 서혁교, 김광민의 글에서 감동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개별 국가의 민주화를 위한 연대가 현재는 보편적 인권운동, 탈식민주의적이고 초국가적인 페미니즘 운동, 성소수자 권리 옹호, 동아시아 평화운동과 차별 철폐 투쟁으로 변화했다. ‘한국 민주주의와 국제적 연대’는 ‘민주주의의 세계화’ 운동의 현장에 밀착해 있기에 ‘세계의 민주화’를 위한 정치적 상상력을 자극한다.
일반논문으로 홍성태, 곽송연, 윤수민·임소연의 연구 성과를 실었다. 홍성태의 「의문사에 투영된 정치적 억압」은 ‘의문사’의 규정이 ‘민주화운동 관련성’과 ‘위법한 공권력의 억압성’을 동시에 충족하도록 한 것이 타당한가라는 문제제기를 한다. 2001년 1월 「의문사진상규명에관한특별법」이 제정되었다. 이 법에 따라 ‘의문사진상조사위원회’가 활동함으로써, 제한적이나마 억압적 시기에 이뤄진 국가폭력에 대한 진실규명이 이뤄졌다. 홍성태의 논문은 81건의 의문사 사건을 분석함으로써, 정치적 억압의 특이성을 밝혀냈다. 의문사 사건이 전두환 정권(40건), 노태우 정권(22건), 박정희 정권(14건) 순으로 발생했다. 가장 많은 의문사가 발생한 전두환 신군부 집권 시기에는 ‘녹화사업’이 군인과 학생의 의문사 피해를 키웠다. 의문사 유형 중 자살과 실종사는 ‘진상규명이 더욱 어려운 사건’으로 조사 종결되는 경우가 많았다. 홍성태는 “의문사를 대하는 공권력의 일관된 무책임성”이 의문사 진상규명을 방해하고 무력화하는 요인이었다는 점을 강하게 지적했다. 이 논문은 국가폭력을 포함한 정치적 억압이 유가족들에게는 현재진행형의 고통으로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환기하고, 의문사 진상규명이라는 민주주의 중요 과제가 아직도 미완의 진행형임을 알려주고 있다.
곽송연의 「민주화 이행기 5·18에 대한 부인 전략과 이행기 정의」는 ‘5·18’ 가해자들의 부인(denial) 전략을 연구한 논문이다. 곽송연은 선행연구에서 ‘광주사태에 대한 계엄사의 발표’를 분석했다. ‘5·18’ 당시에는 ‘유력 정치인의 내란 음모에 지역민들이 부화뇌동’했다는 배후론과 지역주의론이 활용되었다. 민주화 이행기에는 ‘과잉폭력을 일부 수용하는 양비론적 부인’을 하면서도 당시 국가공식담론인 ‘폭동’은 견고하게 유지되었다. 특히, 노태우 정부 시절에는 5·18 부인을 위한 조직적 TF가 설립되어 관련자들의 증언을 통제했고, 김영삼 정부 시절에도 군내 핵심 요직에 포진 해 있던 당사자들의 반발을 우려해 ‘군 검찰 수사의 축소’ 등이 이뤄졌다. 곽송연은 민주화 이행기에 부인 전략이 존속될 수 있었던 이유는 ‘노골적으로 인권 탄압을 저지른 권위주의 관료 처리’를 둘러싼 정치적 대응의 실패 때문이라고 했다. 곽송연의 논문은 가해자의 부인 전략이 민주화 이후인 현재까지 이어져 가해자들을 지지하는 그룹에 의해 재생산되고 있음을 논증했기에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유수민과 임소연의 「‘마초하지 않은’ 너드와 트랜스젠더 개발자의 ‘소속감’: IT 분야의 남성성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는 연구자의 접근이 어려운 트랜스젠더에 대한 문화연구이다. 유수민과 임소연의 연구는 ‘직업인으로서의 트랜스젠더의 일상’에 접근하기 위해 IT 개발자로 근무하는 트랜스젠더 5인과 대면 인터뷰한 내용을 담고 있다. ‘너드(Nerd) 문화’는 ‘비사회성이나 비전형적인 남성성’으로 표현되며, ‘진정한 개발자’로서의 자질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특성이라고 한다. 너드는 ‘직관적 천재성’, ‘선천적이고 독특한 능력자’, ‘여성의 쟁취에 탈락한 남성들’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유수민과 임소연의 연구는 IT 프로그램 개발 분야에는 트랜스젠더 친화적인 하위문화가 존재하며, 다양한 취향을 인정하는 하위문화가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 연구는 트랜스젠더가 IT 분야에서 느끼는 소속감을 밝히고 있어 특이하다. 너드 남성 문화는 비헤게모니적 남성성의 작동이기에 IT분야의 인적 다양성에 일정부분 기여하고 있다고 한다. IT 분야 너드 문화는 사회전반의 성평등 구현에도 하나의 사례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연구자들의 제안이다.
주제서평은 한국 인문사회과학계의 최신 유행 담론으로 자리잡은 ‘포스트휴머니즘’을 둘러싼 지형을 그려냈으며, 일반 서평은 일제강점기 강제 노동으로 희생당한 조선인 징용 노동자 115명의 유골이 귀향하는 과정을 다룬 『70년 만의 귀향』에 주목했다.
진태원은 「포스트휴머니즘 또는 디지털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 한국에서 포스트휴머니즘 수용」에서 트랜스휴머니즘, 분석적·기술적 포스트 휴머니즘, 비판적 포스트휴머니즘을 분류했다. 첫째, 트랜스휴머니즘은 생로병사와 같은 인간의 자연적 조건을 최신과학기술 발전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는 입장을 취한다. 둘째, 분석적·기술적 포스트휴머니즘은 인간의 본질을 “머리와 몸에서 일어나는 패턴과 과정”으로 이해하고, 이를 지탱해 주는 지주가 “생물학적 신체인지 기계적 신체인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이 입장은 ‘인간의 마음’을 전자 신체에 업로딩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고, 이것이야말로 혁명이라는 주장을 펼친다. 셋째, 비판적 포스트휴머니즘은 인공지능이나 과학기술에 기반하기 보다는 더 다양한 비인간(동물, 식물, 기계를 비롯한 무생물)들과 접속하는 “존재들 사이의 촉수적 연결” 혹은 “-되기”로서의 전환을 추구한다. 이 담론은 “페미니즘이나 반유럽중심주의, 또는 반인간종주의 등”에 입각해 “전 지구적인 생물의 멸종이라는 사태”에 대응하는 기획이라고 할 수 있다. 진태원은 포스트휴머니즘 담론들 에 대해 ① 전통적인 휴머니즘과 맺는 “일탈 내지 왜곡”적 관계들, ② 인간과 기술의 바라보는 관점의 문제들, ③ 20세기 말 이후 자본주의 전개과정에 어떤 사회정치적 함의를 갖고 있는가의 문제들이 면밀히 검토해야할 쟁점들이라고 보았다. 진태원의 주제서평은 국내외 ‘포스트휴먼’ 관련 주요 문헌들을 많은 공력을 들여 검토한 글이다. 이 글을 길잡이 삼아 인공 지능을 비롯한 과학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미래에 미칠 영향을 다각적으로 상상해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해 본다.
이영재의 「서평 『70년 만의 귀향』」은 일제강점기에 관부연락선을 타고 시모노세키를 거쳐 홋카이도로 갔던 조선인 징용노동자들을 죽음을 다룬 가슴 아픈 이야기이자, 한 일본인 승려의 세계시민주의자로서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감동의 서사이기도 하다. 혼간지 삿포로 별원에 합골된 유골 71구, 비바이 탄광 주변 죠코지에 안치된 유골 6구, 슈마리나이 우류댐 건설공사 희생자 유골 4구, 아사지노 육군 비행장 건설 희생유골 34구, 이렇게 115구의 유골은 모두 70년간 귀향하지 못했던 원혼들이다. 한국정부와 일본정부의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일본 시민사회 활동가들의 노력으로 115구의 유골이 2015년 9월 ‘70년 만의 귀향길’에 오를 수 있었다. 『70년만의 귀향』의 저자인 도노히라 요시히코(殿平善彦)는 정토진종 보원사파 승려다. 그는 1974년 대학을 졸업하고 시골 절로 돌아와 야스쿠니신사 국영화 시도에 대한 반대활동을 한 인물이다. 그는 1970년대부터 40년 가까이 홋카이도에서 전쟁 중 강제노역으로 희생된 조선인 희생자와 일본인 희생자의 유골 발굴 작업을 해왔다. 요시히코는 유골 발굴 과정 에서 ‘삭제된 기억’을 복원하고, ‘죽음과 연결되는 살아있는 사람의 감각’ 을 경험한다고 했다. 서평자인 이영재는 이 책이 한국과 일본의 시민운동가들의 연대를 보여준다는 점, 역사의 망각을 이겨낸 인간애의 실천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평했다.
2022년은 제20대 대통령 선거와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치러졌다. ‘촛불 혁명’으로 활기넘치던 시민사회의 역동성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급격히 시들어가는 형국이다. 한국 사회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우선시하는 국가정책의 변화로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개혁’이 주춤하고, ‘무한 경쟁’ 이라는 위협담론이 ‘행복한 삶이라는 가치 지향’을 흔들고 있다. 민주주의는 ‘매일 투쟁해서 쟁취하는 것’이라면, 시민사회는 일상적인 민주주의 투쟁을 더욱 끈기 있게 해야 하는 시대에 직면해 있다. 더불어 민주주의의 세계화에 대한 정치적 감각이 더 예민하게 발휘되어야 하는 상황이기도 하다.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기억과 전망』이 한국 민주주의 갱신과 민주 주의의 세계화를 위한 담론 생산의 장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다음 호인 47호에도 시대와 대결하는 결기있고 논쟁적인 글들이 실릴 수 있도록, 편집위원회에서는 실천적 지성의 칼끝을 날카롭게 벼려낼 것이다.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오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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