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본문으로 바로가기

d-letter

왜 지금 시민인가?

talk 시민

왜 지금 시민인가

김윤철 일상의 민주주의, 문화로서의 민주주의가 중요하다

박진 촛불 시민들은 일상으로 돌아갔지만 그 일상 속에 변화가 있다

이영제 다른 사람과 같이 사는 현장이 민주주의이자 촛불

일시 및 장소 2017년 12월 1일 15:00~17:00,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대회의실
진행·정리 이종률·김남희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기획관리실 / 사진 이진욱 사진작가

2017년 12월 6일, 1년 전 촛불집회에 참석했던 1,700만 시민들은 독일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이 선정한 ‘2017 에버트 인권상’을 수상했다. 특정 단체나 개인이 아닌 특정 국가의 국민이 수상자로 선정된 것은 에버트 인권상 제정 이래 최초다. 평화와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하는 우리 촛불시민의 노력이 국제사회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촛불시민은 비정상적으로 작동한 대의민주주의를 직접민주주의의 힘으로 바로잡으며, 이 나라 역사의 물꼬를 돌렸다. 이번 호 민주누리는 촛불시민혁명 이후 새롭게 조명받고 있는 시민에 대해 살펴보고, 민주주의의 미래상을 그려본다.

이영제
2016년부터 17년에 걸친 촛불집회는 역대 유례없는 인원이 참석하여 장기간에 걸쳐 진행되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무실이 광화문에 있다 보니 하루에 한 두 번씩은 꼭 광화문 광장을 지나가게 된다. 가끔은 당시 촛불의 현장을 그려보게 되는데, 사람들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바삐 움직이고 있다. ‘저 사람들이 다 촛불시민이었을 텐데 다 어디로 갔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박진
촛불시위 현장을 들여다보면 1700만 시민들의 의견도 출신도 다 다르다. 대중들은 ‘내가 박근혜가 싫어서 여기 나왔지, 무슨 사드에 성과연봉제까지…’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그런데 6개월 동안 동일한 목표를 쟁취하기 위해 인내하며 정말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를 보여주었다. 반작용도 있었다. 촛불의 목표가 수행되자 시민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분화되었고, 촛불 1주년 때는 서로 갈등 양상도 보였다. 그러나 광장에서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과 1주년 때 서로 싸운 시민들은 분명 같은 사람들이다. 오히려 그래서 촛불 당시 서로를 인내했던 것이 더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촛불광장의 시민들은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지금의 시민들은 광장을 경험하지 못한 시민들과 다르다. 일상 속에 변화가 있다. “하고자 마음먹은 일이 한 번도 이뤄진 적이 없었는데, 촛불 이후에는 하면 될 것 같다는 희망이 생겼다.”는 한 청년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또 민주노총 조합원 수가 촛불 이후에만 1만 명 이상이 늘었다고 한다. 일상과 직장에서 부당하고 억울해도 참아왔던 일들에 대해서 나의 권리를 주장하는, 시민 변화의 징후가 포착되고 있다.

김윤철
프랑스 혁명처럼 왕의 목을 자른 건 아니지만, 최고 권력자를 시민의 힘을 통해 퇴진시키고 새 정부를 출범시켰다는 것은 대단한 경험을 한 것이다. 무엇보다 주권자의 역능을 체험하는 기회였다는 것이 중요하다. 시민들이 “내가 대통령도 잘라본 사람이야.”라는 말씀을 하시더라. 주권자로서의 자각과 자신감이 높아진 상태다.

이영제
촛불의 경험이 시민들 안에 보이지 않는 힘을 축적시켰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여기서 잠깐 시민이라는 용어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 시민이 탄생하게 된 고유한 맥락이 있을 것이다. 해방 이후에는 공민이라고 불리기도 했고, 현재까지도 국민이라는 용어가 많이 사용된다. 시민사회라는 용어를 쓰게 된 것도 민주화 이후가 아닌가?

김윤철
독재정권에서는 자꾸만 시민을 권력에 순종하는 주체로 규정하려 했다. 주권자로서의 역능을 발휘하면 감당이 안 되기 때문이다. 시민이 권리를 주장하고, 국가의 주요 정책 결정과정에 관여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 주권자로서의 위상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정치적 주체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학술적으로는 시민을 시민사회 등장 이후의 주체라고 설명한다. 서구적인 기준이다. 이렇게 보면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민주공화제 수립 이후, 더 구체적으로는 4·19혁명 이후 시민이 공식적 주체로서 역사에 자리매김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이전에도 권력에 저항하고 스스로 주체가 되려는 움직임은 분명히 있었다.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던 19세기에는 인구의 80%가 양반이었다고 한다. 이것은 신분상승에 대한 욕구라기보다는, 나를 지배하는 사람과 내가 다 같은 인간이라는 평등 의식의 발현이다.

박진
말씀하신 동학혁명 이전에도 만적의 난 등 피억압 상황에서 억압을 뚫었던 저항의 움직임이 끊임없이 있었다. 다만 선언, 문서로 만들어진 규정화된 역사가 등장하는 근대 시민혁명은 헌법을 바꿔냈던 87년 6월항쟁이라고 생각한다.

저는 학자는 아니지만, 시민의 정체에 대해서는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시민을 주권자라고 보면, 한편으로 시민은 비시민이라는 존재를 통해 그 존재가 확연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지금 이 시대의 비시민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시민의 의미를 되짚어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시민이 아닌 사람

이영제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제도적 보장을 못 받거나, 주체로 서지 못하고 구성원으로서만 존재하는 비시민뿐 아니라, 아직 시민이 되지 않은 사람이라는 뜻의 미시민이라는 용어도 쓰인다. 이번 촛불에는 이런 영역에 속해왔던 성소수자, 청소년 등이 모두 함께 참여했다. 박진 선생님은 촛불을 직접 주최하며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이 많으셨을 것 같다.

박진
2008년 광우병 촛불 때 처음으로 발생한 프락치 사건의 당사자는 노숙인이었다. 진짜 프락치였던 것 같지는 않고, 자기분노에 차량을 부쉈던 것 같다. 그런데 다른 시위 참여자들이 프락치라고 하며 경찰에 넘겼다. 그걸 보면서 ‘우리가 누구를 동료 시민으로 바라보고 있나’ 하는 고민들을 하기 시작했다.

퇴진행동은 집회만 주재하는 것이 아니라 광장에 모인 시민이 모두 동료이고, 평등한 관계가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역할을 하려 했다. <평등한 집회를 위한 안내서>를 발행하고, 여성비하 발언을 하지 말고, 청소년도 동등한 시민으로 대하라는 발언 규칙을 내세웠다. 피부색이 달라도, 국적이 달라도, 나이가 어려도 이등시민이 아니라 광장에 있는 한 모두 동등한 시민이었다.

‘당신들의 권리는 나중에 좀 더 사회가 좋아지면 보장될 거야’라는 전제는 동료 시민으로서 같이 손잡지 않겠다는 것이다. 광장에서 그랬듯이 청소년을 배제하지 않고, 성소수자 이야기를 듣고, 성주 시민들의 울음을 들어야 한다. 지금 당장은 다 주류담론이 되기 어려워도 그들의 이야기를 계속 듣는 것이 결국에는 나의 삶을, 보편적 삶의 기준을 높이는 길이다. 이런 연대감을 높이면 좋겠다.

김윤철
촛불 때 시민들이 광장으로 나왔던 이유는 ‘내가 위임한 권력을 함부로 쓰는 사람들에게 엄중하게 경고하겠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주권자라고는 하지만 실제 정치에서 비시민적으로 취급받고 주권을 침해받았던 것을 시정하고자 했던 것이다.

또한 촛불에도 나올 수 없었던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했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촛불 참여도가 높았던 것이 사실이다. 정치사회적인 평등이라는 법형식적인 보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실제로 불평등에 고통받고 있는 비시민적, 유령적 존재들이 있다. 다른 한편으로 스스로 선택한 비시민도 있다. 불평등 의식에 사로잡혀 누군가를 배제하고 차별하는 사람들이다. 시티즌십(citizenship)을 시민권(civil right)과 시민성(civility)으로 구성된다고 보면 한쪽에는 시민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고, 또 한쪽에는 시민성이 결여된 사람들이 있다.


왼쪽 퇴진행동에서 만든 <평등과 연대를 위한 집회 시위 행동>
오른쪽 2017년 1월 탄핵촉구 촛불집회 당시 시민들이 미 대사관 벽에 사드를 반대한다는 뜻의 'NO THAAD' 문구를 레이저로 쏘았다. ©연합뉴스

마지노선 민주주의

이영제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를 보면, 시민들의 직접행동은 최종적인 수단이다. 선거와 같은 다른 수단이 있을 경우 시민들은 직접행동에 나서지 않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촛불 규모도 줄어들고, 급속히 선거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근 10년간 다양한 민주주의 지수가 후퇴했다는 경고가 있었지만, 국민들은 좀처럼 나서지 않았다. 태블릿 PC가 없었다면 이번에도 국민들이 선거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을까?

김윤철
한국 민주주의는 마지노선 민주주의라고도 표현할 수 있는데, 주권을 침해받았을 때, 권력이 오만하고 권력을 사유화했을 때, 그것마저 용납할 수는 없다며 거대한 시민저항이 나타나는 민주주의를 가리킨다. 조선시대 때도 피난 가는 선조의 가마에 돌 던지면서 ‘니가 임금이냐’ 했던 국민들이 있었다. 당시에도 후진 권력에 대한 분노와 저항정신이 있었던 것이다. 태블릿 PC는 권력의 후짐을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이기는 했다. 하지만 태블릿 PC가 시민저항을 가져온 것은 아니다. 면면히 이어져 온 후진 권력에 대한 분노와 저항정신이 6월항쟁을 거쳐 촛불로 이어진 것이다. 다만 태블릿 PC가 증거로 나온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필연에 가깝다. 정보화 시대라는 거시적 구조적 차원의 흐름에서 나타난 게이트의 한 가지 특성이라 할 수 있다. 말이 나온 김에 마지노선 민주주의와 관련해 한 마디 덧붙이자면, 그것의 긍정성은 권력의 사유화에 따른 주권의 침해라는 선은 지켜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권을 침해하고 권력을 사유화하는 지도자는 앞으로 나오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에는 마지노선 콤플렉스라는 말도 있다. 특정 지역에 마지노선을 치고 지켰더니 다른 데로 침범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적극적으로 여타의 지역까지 방어하기 위해 민주주의를 심화시켜야지, 그러지 못하면 엉뚱한 곳에서 무너질 수 있다. 우리는 오히려 이러한 다중적 현실을 경계해야 한다.

박진
이명박, 박근혜 정권 때 민주주의의 전선이 뒤로 밀리고 생존권을 위협받는 상황에서는 ‘사람들이 왜 가만 있지? 어떻게 이걸 참아내지? 분노감이나 실망감이 왜 없나?’하는 생각을 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을 만큼의 에너지가 모이는 것은 쉬운 작동이 아니다. 한국사회에는 30여 년마다 한 번씩 엄청난 봉기가 있었다. 4·19혁명, 6·10민주항쟁이 그것이다. 그렇게 봤을 때 한국 시민들의 민주주의 성숙도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실망스럽지 않다. 오히려 한국사회가 굉장한 에너지를 갖고 있는 것이라고 본다.

혁명이라는 것은 시민들의 분노가 양적으로 쌓이는 것뿐 아니라, 이를 폭발시키는 우연적 계기도 필요하다. 태블릿 PC만큼 정유라 사건도 촛불시민혁명의 촉발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시민들은 정유라 사건으로 인해 우리 사회가 특권과 계급이 존재하는 모순된 사회라는 것을 확인했다. 촛불이 가진 근본적인 성격이 이처럼 계급적인 분노이기 때문에 이 사회를 흔들 수 있는 에너지가 있다고 본다.

촛불, 진화의 시작

이영제
처음엔 우문현답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이 바뀌었다. 좋은 답변이 나온 것을 보니 제가 좋은 질문을 던졌구나 싶다. (일동 웃음)

촛불집회를 지칭하는 용어는 다양하다. 혁명, 항쟁, 집회, 시위 등으로 불린다. 촛불집회의 성격을 무엇으로 규정하느냐에 따라 과제도 달라질 것 같다. 저는 개인적으로 촛불시위가 확대되어서 집합적 시민들의 길거리 의회를 이뤘다는 의미에서 ‘촛불집회(candle assembly)’라고 이야기 하고 싶다. Assembly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 민회를 뜻하는 에클레시아로 집회라는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촛불의회를 제도화하기 위한 직접민주주의 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본다. 혁명이라면 사회변혁을 위한 과제들이 여전히 남아있는 것이고, 항쟁이라면 탄핵과 정권교체만으로도 큰 성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박진
어쩌면 지금 우리가 무엇이라고 부르든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촛불시민혁명은 6개월 동안 매주 주말에 많게는 100만 이상 적어도 15만 넘는 사람들이 꼬박꼬박 출석하듯이 아주 성실하게 수행한 아주 독특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이러한 시민들의 압도적 다수 힘으로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평화적으로 정권교체를 해냈다. 이것만으로도 값어치가 있고 분석 대상이 될 것이다. 학교 선생님들이 말씀하시기를 최근에는 학생들이 뭔가를 진정할 때도 학생인권조례나 헌법의 조항을 말하며 자기주장을 한다고 한다. 자기주장 방식이 정교해지고 민주주의 학습이 됐다는 이야기다. 거대한 흐름으로 우리사회가 변화하는 징조가 보인다. 이것이 혁명의 시작이었으면 좋겠다.

김윤철
촛불을 혁명으로 정의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박 선생님에 비하면 신중한 입장이다. 저는 촛불의 명명에 대해 고민하다 집회와 혁명적 의미가 다 담긴 촛불행동이나 촛불항쟁 등으로 쓰고 있다. 다만 혁명의 시작이라고 볼 수는 있다. 그간 ‘혁명’이라는 이미지가 잘못 조성된 경향이 있다. 가령 프랑스혁명이라고 하면 대체적으로 1789년의 사건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것이다. 오늘날의 프랑스 공화정이 제대로 자리 잡기까지는 1789년 이후 80여 년에 걸친 정치사회적 변동의 역사가 있다. 이 변동의 전 과정을 혁명이라고 보는 게 맞다. 집회라는 개념 규정과 관련해 이야기하자면, 사람들이 그냥 집회라고는 쓰지 않으려고 한다. 그 이유는 집회를 ‘그냥 모여 있음’으로만 인식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이영제 박사가 제안한 집회에 대한 ‘assembly’ 차원에서의 새로운 조명은 큰 의미가 있다.

이영제
지금까지 혁명은 기존 변화의 완성이고 사회를 확실히 바꿀 정도의 큰 변화를 동반하는 것이라고 인식되었던 것 같다. 그러나 두 분 선생님 말씀을 듣다 보니, 촛불혁명은 다양한 어젠다를 표출하고 시민의 역량과 사회의 변화상을 확인해주는 계기에 가까운 것 같다.

김윤철
촛불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치며 우리가 계속 혁명을 해왔다는 것을 확인하는 계기도 된다. 혁명에는 지나온 시간만이 아니라 앞으로의 미래도 포함된다.


✽ 국회 탄핵 표결이 가결된 2016년 12월 9일 밤 신문 호외를 들고 촛불집회에 참여한 한 시민의 모습 ©연합뉴스

일상의 민주주의

이영제
시민의회와 직접민주주의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다. 제주도에서는 추첨을 통해 주민자치위원을 모집하고 있고, 서울에서도 2018년부터 시범적으로 몇 개 구에서 실시한다고 한다. 원전 관련 공론토론이 진행되기도 했다. 시민의회가 필요한가? 어떻게 구성되는 것이 바람직한가? 대의제와 어떻게 병행 발전할 수 있는가?

김윤철
사업회가 낸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와 과제>라는 책에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쓴 글에 따르면 “재벌개혁은 리볼루션(revolution)이 아니라 이볼루션(evolution)의 문제”라고 하더라. 촛불이 새로운 의미의 혁명이라고 한다면 전복이라는 의미에서의 혁명이 아니라 진화시켜 가는 것이라는 의미에서의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소셜 이노베이션을 통해 이볼루션을 이뤄가는 것이라는 의미다. 시민이 직접 정부나 시장과 연대와 협력 관계를 가져가면서 직면해있는 내 삶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관 주도 등 한계가 지적됐던 거버넌스의 문제와 같은 제도적 장치를 보완하기 위한 소셜 이노베이션이 중요하다.

박진
2016년 12월 9일 탄핵 즈음을 돌이켜 생각해보자. 정치권에서는 ‘질서 있는 퇴진’을 말하며 정무적 판단을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3차담화를 통해 모든 공을 국회에 던졌다. 이를 뒤집은 것이 광장이다. 서울 165만을 포함해 전국 232만 명의 시민이 거리로 나오면서 정치권이 완전히 돌아섰고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었다. 대의제가 심각하게 제 기능을 못 할 때 직접민주주의가 이런 식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이제는 주권자들이 개헌에 대해 직접민주주의 행동으로 참여하고, 일상의 자기 문제를 가지고 개헌 과정에 참여해야 한다. 이것이 촛불의 광장을 일상의 광장으로 밝히는 일이다.

이영제
국민의 개헌발의권이 유신헌법에서 없어졌다가 민주화 이후에도 되돌리지 못했다. 개헌 과정에 시민이 참여하고 논쟁할 수 있어야 한다.

박진
촛불광장에서 이루어진 민주주의의 내용을 당장의 정치적인 성과로 소급하려는 것이 참 아쉽다. 촛불을 분석하고 회고하는 담론은 많지만, 진화하는 과정의 문제로 혹은 민주주의 자체의 문제로 보려는 노력이 의외로 별로 없다. 촛불시민혁명으로 만들어진 정부라면, 당장 적폐청산을 이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적폐청산의 과정에 시민이 주도적으로 참여할 공간을 여는 것도 중요하다. 시민사회도 지금부터는 민주주의를 어떻게 삶에 뿌리 내리게 하고 일상 속에서 바꿔낼 것인가에 주목해야 한다. 이를테면 시민단체들과 함께 시민평의회를 한다거나 청년평의회를 하면 좋겠다. 자꾸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

김윤철
직접민주주의가 만능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도 위험하다. 예를 들어 얼마 전 열렸던 서울시의 미세먼지 대토론회를 보면, ‘미세먼지에 대해 말하고 싶은 사람들은 광장으로 모여라’라고 했는데, 그럼 광장으로 나오는 사람들이 누구이겠나. 미세먼지 없애자고 찬성하는 사람들이다. 미세먼지 없애는 비용을 실제로 감당해야 할 기업과 중소상인들은 광장에 나올 수 없다. 그렇게 광장을 열고 이게 직접민주주의라고 말한다. 구호, 이념, 원리의 문제로만 생각하기 때문에 나오는 문제다.

일상에서의 민주주의는 민주화 30년 과정의 성과이기도 하다. 동아리나 이웃 등 작은 그룹의 삶의 자치와 분권을 강화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문화로서의 민주주의다. 나와 생각, 처지, 세대, 문화양식이 다른 사람과 어떻게 갈등을 해소하고 협업을 할 것인가에 대한 규범과 문화를 만들고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박진
일상의 민주주의가 확대되고 있다는 증거는 끊임없는 ‘시끄러움’이다. 최근에도 김종대-이국종 논쟁, 유아인의 페미니스트 논쟁 등 끊임없이 시끄러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물론 이게 다 긍정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서로가 끊임없이 이야기를 떠들다 보면 합리적 수준을 찾아가게 될 것이다. 개헌 논의에서 농민들이 농민헌법운동본부를 구성하고 기본권 안에 농민권을 넣겠다고 백만 투표 캠페인 등 대대적인 운동을 벌이고 있다. 어떤 방식으로든 자기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 자체는 긍정적이다. 다만 이러한 움직임을 더 조직적으로 변화시킬 필요는 있다. 촛불에 나왔던 시민들이 삶 속의 공간, 즉 학교 운영위원회나 마을 반상회 등의 모임에 침투해서 일상 속에서 민주주의를 실천해야 한다.


✽ 박진 씨가 일상의 민주주의가 확대되고 있다는 증거로 언급한 김종대(왼쪽)- 이국종(오른쪽) 논란. ©연합뉴스

시민사회의 자기혁신

이영제
한국 시민사회는 ‘시민 없는 시민사회’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는 촛불 이후에도 유효한가? 시민사회의 변화 지점과 과제는 무엇인가?

박진 시민사회운동은 당분간 어려울 것이다. 시민단체도 대의적인 성격을 가지기 때문에, 민주정부가 들어서면 오히려 시민단체 회원 수가 뚝뚝 떨어진다. 활동가들은 더 바빠졌다. 예전에는 싸움만 하면 됐는데, 이제는 싸움과 협의를 다 해야 한다. 또 소위 문재인 대통령 극렬 지지자들의 반응처럼 진보운동에 대한 예상치 못한 공격도 있다. 시민사회의 물이 깊지 못하다 보니 튀는 물이 등장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급속도로 제도화되거나 극좌적으로 살아남을 우려가 있다. 그럼에도 깊은 우물이 생길 가능성도 있다. 예전에는 시민단체 하면 위험하고 근처에 오기 무섭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이 주류담론인 경우가 있어서 비교적 다가오기 쉬워하신다. 앞으로 시민사회는 누군가의 삶을 대의해주는 방식을 넘어서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시민이 직접 자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매개체가 되어줘야 한다.

김윤철
사회운동도 시민운동도 자기혁신을 해야 한다. 그간 중앙권력에 대한 권력감시자로서의 역할에 치중하고, 캠페인 중심의 활동을 하고, 변호사 등 전문가에 의존하면서 시민의 새로운 상식을 만들지 못했던 것을 반성해야 한다. 삶의 민주주의라는 기치 하에 생활 현장에서의 소셜 이노베이션, 즉 일상적 삶을 새로운 사회의 건설을 위한 공동실천의 장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혁신 방안을 찾아봐야 한다. 이 과정에서 시니어 활동가분들도 젊은 친구들과 협업하는 주체로 거듭나야 한다.

시민이 주체로 서는 시민교육

이영제
한국에서 시민교육은 국가주도로 왜곡된 측면이 있다. 민주시민교육은 어떻게 진행되어야 할까?

박진
한국사회는 굉장히 좋은 제안도 제도화하면 박제로 만들어버리는 독특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시민교육분야에도 정말 많은 좋은 제안들이 있지만, 제도화를 하려면 지도자 양성, 교육시간 쿼터제, 콘텐츠 생산 이런 쪽으로 논의가 흐른다. 시민들이 주체로 등장할 수 있도록 입체적으로 설계해야 한다.

김윤철
한국에서 민주시민교육 활동가들이 스웨덴의 스터디민주주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이해를 잘 못 했었다. 서너 명이 뜨개질하는 것도 시민교육이라며 지원하는 것을 보고, 지원 자격과 요건도 따지지 않는다고 비판했었다. 민주화 이후에 시민교육을 제도화하는 과정에서 능력에 따른 선발, 즉 메리토크라시(능력주의)적인 경향을 받아들인 것이다. 모여서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는 것 자체가 갖는 민주적이고 시민적인 것을 수용해야 한다. 민주시민교육이 조금 더 진도를 나가서, 개인의 삶의 영역까지 내려가 민주주의를 심화시키는데 기여해야 한다.

기념과 기록, 미래의 열쇠

이영제
다른 사람과 같이 사는 현장이 민주주의이자 촛불이다. 그런 의미에서 촛불집회 등 한국 민주주의 실천을 기념하는 시민적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시민들이 그곳에서 자신이 만들어낸 민주주의의 소중함과 과제를 깨닫고 되새길 수 있도록 말이다. 더불어 대통령 등 정치 지도자들도 그러한 기념시설을 일상적으로 보면서 민주주의와 국민에 대해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다.

김윤철
맞는 말씀이다. 학자나 지식인들이 자료를 기록하고 수집하고 남기고 해야 하는데, 자기 역할을 못 했다. 학자들이 자의적으로 서구 이론에 기대어 개념적으로 규정하고 조명하는 것을 벗어나려면 기록이 참 중요하다. 독재 치하에서는 열사를 기념하고 치열함을 기록하기 위한 움직임이 필요했다면, 앞으로는 세대 간 문화 소통에 기여하는 민주기념관을 만들면 좋겠다.

박진
저 개인적으로도 예전에는 당장 닥친 일의 추진이 바빴지 기록하고 남기는 것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는데, 세월호를 거치면서 기록되는 것이 결국은 역사에 남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퇴진행동은 최근 촛불백서 작업을 하고 있다. 백서에 담지 못하는 모든 기록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와 서울시 아카이브에 이관할 예정이다. 저희는 어떻게 하면 모든 기록을 낱낱이 남길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다. 이러한 기록이 훗날 우리가 어떤 식으로 커뮤니케이션했는지를 설명할 뿐 아니라, 당시의 민주주의를 가늠할 수 있는 구체적인 사료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또한 올해 3월 10일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을 기념해 광화문 어딘가에 기념비를 남기려 한다. 비라고 해서 높이 세우는 것이 아니라, 바닥에 까는 형식으로 계획하고 있다. 얼마 전에 소녀상을 만든 김운성 작가를 만났는데, 아직도 광화문 광장 길바닥에 촛농 자욱이 남아 있다고 하더라. 자연스럽게 남아있는 촛불의 흔적이 감동스럽게 다가왔고, 이런 흔적을 찾는 일이 진짜 기념이 아닐까 싶었다.

이영제
왜 지금 시민인가라는 질문으로 좌담을 시작했는데, 지금뿐만 아니라 이전부터 미래까지도 ‘시민’이라는 흐름 속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긴 시간 고생하셨다.


✽ 청와대 본관에 걸린 임옥상 작가의 작품 ‘광장에, 서’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