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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관-당시 21세

정연관-당시 21세

정연관(당시 21세)

1966년 12월 강원도 삼척군 출생
1973년 3월 철암국민학교 입학
1978년 2월 대구 남산국민학교 졸업
1981년 2월 대구 경구중학교 졸업
1984년 2월 포항 대동고 졸업
1986년 5월 군입대
1987년 12월 4일 운명
정연관 동지는 87년 12월 4일 부재자 투표일 사망하였다. 그리고 다음날 5일 새벽 5시, 대구에 있는 집으로 사망통고가 전화로 왔다. 통고를 받고 깜짝 놀란 가족들은 “사망 이유가 무었인가?”라고 묻자 부대 관계자는 “와 보면 안다”라고 답할 뿐 정확한 사인을 밝히지 않았다. 가족들은 당일 급히 부대에 찾아가 다시 자초지종을 물어보자 군관계자는 “사흘 후에 훈련이 있어 군기를 잡는다는 명목으로 병장 백재윤이 내무반에서 9명의 사병들을 침상끝에 세우고 두 차례나 돌아가며 주먹으로 구타하여 정상병이 관물대에 머리를 받혀 사망했다”고 밝혔다.

신체검안서에는 사망 원인으로 “외력에 의한 원발성 쇼크사로 규정하고 종합적인 부검결과는 추후 통보한다”고 나왔다. 그러나 시신의 상태는 그렇지 못했다. 목 뒤에 시퍼렇게 피멍이 들은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고 또한 양 엉덩이에도 피멍이 들어 있었으며 등 뒤에도 청자색으로 구타당한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볼 때 한 두 차례에 의한 주먹질로 사망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 사건에 관련된 병장 백재윤은 3년형을 선고 받고 복역을 했으나 나중에 감형되어 18개월 징역을 살고 출소했으며 나머지 4명은 한 달 살고 모두 나왔다. 이들에 대한 심문과정에서 백 병장은 “정군과 개인 감정은 일체 없었고 정군이 같은 금속수리반의 조수로 함께 근무해 친한 사이였다”고 말하고 사고 당일 음주를 하지 않았으며 정연관 동지를 폭행한 것은 그 때가 처음이라고 했다. 또 군당국이 조사한 사건개요 설명에 의하면 백병장은 정연관 동지를 손바닥으로 구타했다고 했으나 그러나 백병장은 두 주먹으로 구타했다고 진술하여 중요한 사인이 되는 구타 과정에서 서로 일치하지 않는 점을 보이고 있다.

정연관 동지는 군대에 가기전 대구 계명대 앞에서 선물의 집을 운영하며 변혁운동도 하며 투철한 역사의식을 가졌다는 것을 주변 사람들이 증언하고 있다. 비록 군대이지만 자기 소신을 굽히지 않고 야당 후보에 기꺼이 한 표를 행사한 댓가로 죽음에 이르게 된 경위는 반드시 선거와 관련되어 죽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더우기 평소에 썼던 일기장에 틈틈이 부대에서 느낀 점을 기록해 둔 것을 동료인 병장 홍의표가 소지하고 있으면서 “정상병이 각오를 단단히 했다”고 증언하며 제대 후 병장 백재윤과 병장 홍의표외 동료 1명이 사회에서 “양심선언”을 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으나 가족이 제대한 당사자들을 만나 보았으나 저마다 말이 틀렸다. 유족이 백병장을 상대로 녹음을 해 둔 정확한 근거로 “사건이 일어나기 한달전부터 방위병까지 전부 불러 기호 1번 노태우 후보를 찍으라. 몇 %까지 나오지 않으면 지휘관들이 옷을 벗는다.”는 교육을 시킨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정연관 동지가 단순히 기합을 받다 한 두차례로 얻어 맞은 구타로 죽었다고 보기에는 미흡한 점이나 의심이 가는 부분이 많다.

대전국립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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