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용찬-당시 25세

양용찬-당시 25세

양용찬(당시 25세)

1966년 제주도 남제주군 출생
1982년 2월 서귀포고등학교 졸업
1985년 3월 제주대 인문대 사학과 입학
1987년 군입대로 휴학, 제대 후 복학하지 않고 자진 중퇴함
1989년 서귀포 나라사랑 청년회 가입
1990년 UR반대와 제주도 개발 특별법 반대투쟁
1991년 11월 7일 서귀포 나라사랑 청년회 옥상에서 “제주도 개발 특별법 저지”등의 유서를 남기고 분신, 투신
제주도를 끔직이 사랑했던 양용찬 동지는 89년 서귀포 나라사랑 청년회에 가입하여 낮에는 타일공으로 일하면서 청년회 내의 ‘농민사랑’ 모임의 구성원으로 활동을 하였고, 그 후 농민사랑 대표로서 활동하였다. 양동지는 ‘서귀포지역 문제 대책위’ 에 참가하여 서귀포 지역 개발 문제, UR 과 제주도 개발 특별법, 농수산물 수입개방 및 지역 감귤문제등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또한 양용찬 동지는 ‘세계의 관광지 제2의 하와이보다는 우리의 삶의 터전으로서 생활의 보금자리로서 제주도를 원한다.’는 유서를 남기고 “특별법 저지”,“민자당 타도”를 외치며 분신하였다.



동지가 남긴 글


<‘나의 하루’中>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나저나 오늘은 6시 이전에는 일을 끝내야만 한다. 그래야만 모임에 늦지 않고 참석할 수 있다. 벌써 사계다. 일터에 도착한 것이다. 차창 밖을 내다보니 몸이 움츠러든다. 하얗게 쌓인 눈 위에 바람이 몰아치니 흡사 하늘에서 눈이 내리는 것 같다. 차에서 내려 단숨에 3층까지 뛰어 올랐다. 하지만 3층은 더 강한 바람이 불어온다. 일이 아무리 좋지만 이런 날에 하루종일 일할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하다. 연장을 내려놓고 빈 드럼통에 나무를 주워 다가 불을 피워 놓았다. 이제 살 것 같다.

몸이 풀리니 이제부터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시멘트를 가져와 물에 타서 반죽을 만드니 매형이 준비를 끝내고 벽에 시멘트를 바르기 시작했다. 그 동안에 나는 밑에 내려가 타일을 운반하고, 시멘트를 어느 정도 바르자 둘이서 붙이기 시작했다. 해는 이제 떠오르는 것 같은데 배가 고파온다. 시간을 보니 12시10분전이다. 일할 때마다 느끼지만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이대로 하다가는 야간작업을 해야 될 것 같다. 이런 때는 결단을 빨리 내려야 한다.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서는 일을 끝내지 못해도 6시 정도에 먼저 가야 하기 때문이다. 매형에게 이야기하니 시간되면 먼저 가란다. 알았다고 대답했지만 미안해서 먼저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드디어 점심식사다. 식사를 하는데 주인 아저씨가 5일 후면 막내아들 결혼식이니 오늘 중으로 일을 끝내야 남은 날짜에 끝마무리하고 가구를 들여놓아 결혼 준비를 할 수 있다고 한다. 조금은 부럽기도 하고 조금은 비참해지기도 한다. 아들이 결혼한다고 3층 건물을 지어 줄 수 있는 아버지, 나에게 있는 것은 몸뚱아리 하나뿐이다. 만약 내가 결혼 한다고 해도 집에서 집을 지어준다고 할 형편은 못된다. 하지만 끓어오르는 스물 다섯의 피가 있다.



<유 서>

나는 우리의 살과 뼈를 갉아먹으며 노리개로 만드는 세계적 관광지 제2의 하와이보다는 우리의 삶의 터전으로써 생활의 보금자리로써의 제주도를 원하기에 특별법 저지, 2차 종합개발계획 폐기를 외치며 또한 이를 추진하는 민자당 타도를 외치며 이 길을 간다.

어머니 아버지 그 동안 효도 한 번 못해 드리고 걱정만 끼쳐 드리다 가장 큰 불효를 하게 됐습니다.

죄송합니다.

진정으로 사랑하고 항상 함께 있고픈 고향 친구들. 자네들은 언제나 나를 이해해 주었고 따스하게 맞아 주었다. 고마웠다. 술 너무 마시지 말고 열심히 살아라.

란이 누나. 신세만 지다 이번 결혼식 때에는 도움이 되고 싶었는데……

떠오르는 모든 이들에게 인사하고 싶지만 끝이 없을 것 같아 이만 줄입니다.



<편 지>


어머님 전상서


어머님, 당신은 우리 것도 남아 도는데 왜 외국 농축산물을 수입하는지 농민의 종으로 일하겠다는 사람들이 왜 몇 억씩 들이며 조합장 선거에 출마하는지 무척이나 궁금해 하였지요.

대학에 다니다 휴학하고 내려온 똑똑한 동생이 미국의 본질이 무엇이고 사대 매국 세력이 어떻고 부지런히 설명해 댔지만 우리는 맞는 말인지 틀린 말인지 알아 들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당신이 자랑처럼 말씀하시는 4·3전사(戰史) 속에서 왜 농축산물이 개방되고 왜 조합장 선거에 몇 억의 돈이 필요하고 왜 부지런하다는 말을 들으며 평생을 살아온 당신에게 지금은 빚더미와 빼앗기다 남은 조그마한 밭뙈기 뿐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개구리마냥 불룩 튀어나온 배를 채워 당신의 굽은 허리로 일구어낸 자갈밭을 빼앗아간 저들 당신의 호미로 이 아들의 괭이로 쫓아내야만 합니다. 어머님 핵과 군화발이 이 강토 이 산하를 윤간하고 있습니다. 수입 개방은 우리의 목을 죄어오고 종합개발은 우리를 거리로 내쫒고 있습니다. 공권력이라는 이름이 폭력이, 우리의 목소리를 억누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또한 저기 저 한라산의 철쭉은 우리의 시퍼런 한을 품고 피어나고 있습니다. 어머님 당신의 아들이 소위 엘리트가 되기를 바라지 마십시오. 그저 부지런한 농사꾼이기를 원하십시오. 철쭉꽃 입에 물고 쓰러져간 4·3전사(戰史)들이 부활하는 자주 민주 통일의 꽃 협죽도이기를 기도하십시오.

서귀포신례리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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