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호-당시 31세

서영호-당시 31세

서영호(당시 31세)

1962년 3월 1일 출생
1981년 우석고등학교 졸업
1986년 11월 21일 현대자동차 입사
1989년 소위원 가입
1990년 4. 28 연대투쟁시 선봉대 활동
1991년 소위원 활동, 노민추 사업부
3대 집행부 정책연구부장
교양지 “단결과 전진” 편집위원
1992년 1월 21일 경찰침투 대비 바리케이트 설치 중 차량사고로 해성병원 입원
1993년 7월 1일 오후 9시 26분경 운명
1993년 7월 5일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장으로 장례를 치룸
서영호 동지는 91년 3대 집행부 정책연구부장으로 활동하였다. 91년 12월말 성과분배정의실현 상여금 투쟁을 벌이고 있던 현대노동자를 정권과 현대재벌은 공권력으로 짓누르려 하였고, 여기에 맞추어 여론에서는 경찰투입이 임박했음을 앞다투어 보도하고 있었다.

12월의 매서운 추위속에서 투쟁의 파고는 다소 경직되었으나, 상용 5공장 조합원들은 최후의 한사람까지 작업장을 사수한다는 결의로 뭉쳐있었다. 서영호 동지도 정문을 사수하는 책임자로서 조합원들과 함께 경계근무를 하며 현장을 지키고 있었다.

92년 1월19일 공권력 투입설이 여론을 통하여 선전되면서 긴장감이 가중되기 시작했고, 당시 현장에는 500여명의 사수대만 남아있었으나 1만2천의 경찰병력을 동원해 회사의 담벽을 둘러싸고 있었다. 급박한 상황에서 서영호 동지는 즉각 바리케이트를 구축하라는 명령을 하달받고 현장에서 지휘를 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차량 바리케이트를 치기 위해 소속 조합원이 운전하던 브레이크와 전조등이 작동하지 않는 불량 차량이 동지와 충돌하게 되었다. 칠흙같은 밤에 전방을 확인할 수 없는 문제의 차량을 이동운전하다 생긴 사고였다. 동지는 즉시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의식불명인 상태로 520여일을 투병하다 끝내 1993년 7월1일 운명하였다.



동지를 생각하며


일년전 7월5일 우리는 서영호 열사를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장례식으로 치뤘습니다. 가족들의 오열과 조합원 동지들의 슬픔과 분노, 그리고 오열속에서 수백의 만장과 꽃상여를 앞세우고 해성병원, 현대자동차 본관 잔디밭, 수출선적관리부 너른터, 동구 시민운동장에서 발인제와 영결식, 노제를 지낸 뒤 양산 솥발산 공원묘지에 노동열사 서영호 열사의 묘비를 세웠습니다.

서영호 열사가 가신 뒤에도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내에서는 회사측의 부당한 노동탄압이 계속 자행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정권은 문민정부라는 허울을 뒤집어 쓰고 여전히 노동자의 생존권을 옥죄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에 맞선 노동자의 투쟁도 날로 조직화되고 있습니다. 나아가 노동자 단결과 연대는 어용노총을 박살내고, 진정한 노동자의 조직인 민주노총 건설의 걸음을 내딛고 있습니다.



동지가 남긴 글


<노동조합 가입시 자신의 견해를 소개한 글>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서 저임금과 장시간의 노동으로 한국경제의 고도성장(고른 성장이 아니라 기형적인 성장)의 주역인 우리 노동자를 또다시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저들의 비인간적 행위에 분노하며 임금동결, 노동운동 말살책동 등 노동자를 탄압하는 저들의 의도를 깨부수고 민중의 자주권을 수호해야 하겠습니다.

가진 것이라고는 몸뚱아리뿐인 우리 노동자가 악덕 자본가와 기득권 유지를 위해 노동자와 민중을 탄압하는 정권에 대항하여 노동해방을 쟁취할 수 있는 길은 단결뿐입니다. 그 단결은 의식화와 조직화로 결정될 것입니다.

유신교육과 관제언론의 영향으로 민중(노동자)탄압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직장 동료들에게 올바른 의식과 진실이 무엇인지를 알리는 홍보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추모시


“산자의 투쟁으로 기필코 이루겠습니다.”


서영호 동지여, 동지여

이제 가슴팍의 슬픔보다 더 뜨거운 분노가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이 슬픔, 이 분노

결코 콘베이어벨트위에 날려버릴 수는 없습니다.

결코 자본가의 떡고물에 날려버릴 수 없습니다.

서영호 동지여, 동지여

입술이 타도록 외쳤던 동지의 쇳소리

가슴이 터지도록 외쳤던 동지의 역사의 진실

………………………

역사를 바로잡고, 진실을 세워나가는

자랑찬 노동자의 힘찬 기상이 있습니다.

서영호 동지여, 동지여

산자가 따릅니다.

산자가 이루렵니다.

여기 우리 산자가 동지의 뜻 기필코 이루겠습니다.

서영호 동지여

영원한 동지여 편히 잠드소서

양산솥발산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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