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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정-당시 21세

박혜정-당시 21세

박혜정(당시 21세)

1965년 1월 19일 서울 출생
1983년 신광 여자고등학교 졸업
1983년 3월 서울대학교 인문대 어문계열 입학
1984년 국어국문학 전공
1986년 5월 21일 한강에서 투신
동지는 중산층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감수성이 예민하고 문학에 꿈을 둔 조용한 학생으로 성장하였으며 83년 서울대에 입학하였다.

80년대의 암울한 정치상황은 학원도 예외일 수 없어서 군부독재의 군화발은 아크로폴리스(서울대 민주광장)와 도서관, 그리고 학생들의 가슴속까지 짓밟아 들어왔으며 80년 5월 광주의 피의 진실은 억눌린 민주주의 안에서 거론조차 되지 못했다.

대학생활을 통해 동지는 점차 사회의 모순을 알게 되고 나아가 문제해결을 위해 벗들과 함께 학습토론을 시작하면서 삶의 건강성을 체득하기 시작하였지만 수많은 갈등과 두려움으로 고뇌했다. 그러던 중 가두시위에서 연행되어 구류 사흘을 받았는데 관악서 유치장에서의 3일간은 모순된 현실을 변혁하기 위한 운동의 당위성과 이를 실현해나가는 자신의 불철저함, 나약함 사이에서 발생하는 시련을 더욱 가혹하게 던져주었다.

그러나 동지는 혼란과 갈등, 좌절과 다시 일어섬의 반복과정을 겪으면서도 진정 진실되고 용기있는 삶을 꾸리기 위해 몸부림쳤다.

1986년 봄 대학가는 전방입소거부투쟁의 불길이 치솟았고 4월28일 서울대의 이재호· 김세진 동지 양키용병교육 결사반대를 외치며 분신했다. 자신의 한계를 딛고 변혁의 길에 동참하기 위해 새로운 열의로 발걸음을 내딛은 동지는 5월19일 ‘문익환 목사님 초청강연회’도중 교내까지 들어온 전경들과 운집한 학우들앞에서 이동수 동지가 불덩이가 되어 투신하는걸 목격하고 “우리 그리고 내 힘이 현사회를 변혁시키기에 너무 무력하다”며 괴로워했다.

5월21일 박혜정 동지는 한강에서 몸을 던졌고 22일 상오 10시30분경 동작대교 부근에서 숨진채 발견되었다. 투신하기 직전에 쓴 자필유서에는

“분신자살로 치닫는 현실을 감당할 수 없다. 아파하면서 살아갈 용기 없는 자, 부끄럽게 죽을 것, 살아감의 아픔을 함께 할 자신 없는자, 부끄러운 삶일 뿐 아니라 죄지음, 이 땅의 없는 자, 억눌린 자, 부당하게 빼앗김의 방관, 더 보태어 함께 빼앗음의 죄, 더 이상 죄지음의 빚짐을 감당할 수 없다.”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진실에 눈을 뜨고 진실을 실천하기 위한 숱한 고민과 몸부림 끝에 동지는 떠나갔다.



동지가 남긴 글


<유 서>

숱한 언어들속에 나의 보잘 것 없는 한 마디가 보태진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니. 그러나 다른 숱한 언어가 그 인간의 것이듯, 나의 언어는 나의 것으로, 나는 나의 언어로 말할 수 있겠지.

~야, 뭘 할 수 있겠니. 내가 지긋지긋하게 싫더라도 어쩔 수 없음을 네가 모르지 않을진데 요구하지마, 요구하지마! 강요하지 말 것.

구체적인 것이다. 산다는 건, 살지 않더라도, 사는 것 같지 않더라도 숨쉬는 건 구체적인 것이다.

허파와 기관지와 목구멍과 코와 입으로 숨쉬고 있지 않니. 어떻게 우리가 관계를 끊고 살까?

없었던 걸로?

떠남이 아름다운 모오든 것들.

괴로운 척, 괴로워 하는 척 하지 말 것.

소주 몇 잔에 취한 척도 말고 사랑하는 척.

그래 이게 가장 위대한 기만이지. 사랑하는 척. 죽을 수 있는 척.

왜 죽을 수 없을까? 왜 죽지 않을까?

자살하지 못하는 건, 자살할 이유가 뚜렷한데 않는 건 비겁하지만 자살은 뭔가 파렴치하다. 함께 괴로워 하다가 함께 절망하다가 혼자 빠져버리다니. 혼자 자살로 도피해 버리다니.

反省하지 않는 삶. 反省하기 두려운 삶.

反省은 무섭다. 그래서 뻔뻔스럽다. 낯짝 두꺼워지는 ....

아파하면서 살아갈 용기 없는 자, 부끄럽게 죽을 것.

살아감의 아픔을 함께 할 자신 없는 자.

부끄러운 삶일 뿐 아니라 죄지음이다.

절망과 무기력, 이땅의 없는 자 억눌린 자 부당하게 빼앗김의 방관,

덧보태어 함께 빼앗음의 죄.

더 이상 죄지음을 빚짐을 감당할 수 없다.

아름답게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부끄럽다

사랑하지 못했던 빚 갚음일 뿐이다.

앞으로도 사랑할 수 없기에.

욕해주기를.... 모든 관계의 방기의 죄를.

제발 나를 욕해 주기를, 욕하고 잊기를....

86. 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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