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사정보

박동학

박동학

박동학

- 1973년 3월21일 경남 합천 출생
- 1991년 경남 거창고등학교 독서토론 동아리 ‘단지’회장. 거창지역 고등학교 동아리연합회 활동.
- 1992년 3월 대구공전 전자계산과 입학
- 1993년 총동아리 연합회 회장
- 1996년 대구공전 총동아리 연합회 조직국장으로 활동
- 1996년 5월6일 학생자치권 보장 지도교수제 폐지, 신규 동아리 인정' 등을 요구하며 투쟁 중 학교측의 학생자치권 탄압과 기만적 작태에 분노하며 온몸에 휘발유를 붓고 학생자치권 보장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의문의 불이 붙어 전신 3도 90%화상을 입음
- 1996년 5월8일 남은 동지들이 못다한 투쟁들을 다 할 것을 믿으며 운명
- 제 97차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심의위원회 인정자

동지는 ’92년 3월 대구공전 전자계산학과에 입학하여 동아리연합회 차장으로 활동하면서,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출범식 및 군사독재 청산 촉구 집회 등에 참석하였고, ’93년 동아리연합회 회장으로 당선되어 활동하였다. 군복무를 마치고 ’95년 가을 복학하여 활발히 활동하였고, ’96년 경 동아리연합회 조직국장으로 활동하던 중 ’96년 5월 6일 학생과 사무실에서 학생자치권 인정을 요구하며 학생과장과 실랑이를 벌이던 중 발화사고가 일어나 병원에서 치료 중 5월 8일 운명하였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결과 학생과장과 실랑이 과정에서 몸에 불이 붙은 것으로 확인되었고 몸에 불이 붙은 후 학생과 직원들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경찰은 사건이 발생한 후 학생과 사무실에 대한 현장검증을 실시하지 않았고, 사고 현장 목격자들에 대한 조사와 현장실지조사 실시결과 학생과장의 과실치사 혐의점을 발견하였다.



대구 공전은 매년 15% 정도의 등록금 인상과 모든 것을 학생의 등록금에 의존하려는 재단측의 비교육적 모습, 대학생이라면 응당 누려야할 기본적인 자치 활동마처 보장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이에 총동아리 연합회에서는 96년에 동아리 자치권보장, 지도교수제 폐지, 신규동아리 인정권 등의 요구를 내걸고 투쟁하였다. 그런데 학교측은 박동학 동지가 각과의 실험실습비 등 여러문제를 걸고 집회에서 사회를 보았다는 트집을 잡으면서 학생자치권 보장을 요구하는 학우 서명지와 7개 요구안을 백지화시켰다. 급기야 동지는 온 몸에 휘발유를 붓고 다시 한 번 학장과 학생과장의 면담을 요청했다. 이 과정에서 의문의 불(학생과장이 불을 붙였다고 동지가 얘기함)이 붙어 96년 5월 8일에 운명하였다.



동지를 생각하며


1996년 5월6일 학생자치권 보장에 대한 7개요구안이 백지화되자, 박동학 동지는 “너무 분하다” “당장 학생과로 가서 담판 짓겠다”고 얘기하며 휘발유를 사들고 당일 오후 4시20분경 총동아리연합회 회장과 함께 들어가 학장과 학생과장의 면담을 요청하였다. 이에 학생과 직원들은 면담은 커녕 비웃음만 지을 뿐이었다.

급기야 동지는 온 몸에 휘발유를 붓고 다시 한 번 학장과 학생과장의 면담을 요청하였다. 이때(4시30분경) 우연히 학생과로 학생과장이 들어왔다. 동지는 학생과장을 향하여 학생자치권을 보장하지 않으면 불을 당기겠다고 외쳤다. 그러자 학생과장은 “그래라 이 새끼야!”라는 등 온갖 욕설과 비웃음을 보냈다. 학생과장의 태도로 인해 동지가 몸에 불을 붙일지도 몰라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동연회장이 소화기를 구하러 간 사이에 몸에 불이 붙었다. 이후 동지의 말에 따르면 동지가 들고 있던 라이터가 떨어지자 학생과장이 그 라이터를 주으면서 동지의 등 뒤쪽에서 불을 당겼다고 한다.

이후 병원으로 옮기는 도중에 동지는 시종일관 “내가 그런 것이 아니다. 학생과장이 그랬다”고 얘기했으며 병원에 도착한 후 가족과 선배, 기자, 의사, 형사등이 있는 자리에서 “민아 내가 그런 것이 아니다. 학생과장이 등뒤에서 불을 붙였다” “학생자치권 반드시 확보해야 하며 자주학원 건설하고 조국통일은 반드시 이루어야 한다.” “나는 죽지 않는다.”라고 얘기했다.

동지의 죽음에 대한 의문은 아직도 풀리지 않고 있다.

대구 현대공원묘역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