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예종-당시 50세

도예종-당시 50세

도예종(당시 50세)

1924년 12월 25일 경북 출생.
1939년 동경 서성중학에 진학하여 5년 과정마치고 귀국
1946년 8월 경북 봉월, 영주, 서부 등 국민학교 교원생활
1948년 남로당에서 활동
1953년 대구대학 경제학과 졸업
1958년 12월 상주고등학교 교사
1960년 경북 영주군 교육감에 당선(미발령)
1960년 10월 민주민족청년동맹(민민청) 경북간사장
1964년 3월 인민혁명당 중앙상무위원회 위원장
1964년 7월 인민혁명당 사건(1차 인혁당 사건)으로 체포됨. 반공법위반으로 3년 선고
1974년 4월 20일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으로 체포됨.
1975년 4월 8일 대법원에서 사형확정(대통령 긴급조치 위반, 국가보안법 위반, 내란예비음모, 반공법 위반)
1975년 4월 9일 사형집행
대구 칠곡현대공원에 안장
1924년 경북 출생. 1964년 1차 인혁당 사건으로 구속되었으며, <인민혁명당 재건 단체사건>으로 사형되었다.

민민청(민주민족청년동맹) 경북지부 결성을 위한 활동을 하였으며 1960년에 결성된 민민청 경북도맹 준비위의 간사장으로 선출되었다. 1961년 1월에는 서도원과 상의하여 <영남일보> 1961년 1월 11일자에 민민청경북도맹 준비위원 일동 명의로 조국통일에 대한 호소문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도예종의 변혁운동에 대한 인식은 1961년 <영남일보> 2월 8일부터 12일까지 연재한 ‘노동운동과 통일문제’란 글에 잘 나타나 있다. 그는 일 글에서 우리나라의 ‘역사적 활동단계가 민족혁명단계에 있고, 민족혁명은 민족전체의 과제이며 바로 통일’이라고 주장했다.



<약력>


1924년 12월 25일 경북 출생.

1939년 동경 서성중학에 진학하여 5년 과정마치고 귀국

1946년 8월 경북 봉월, 영주, 서부 등 국민학교 교원생활

1948년 남로당에서 활동

1953년 대구대학 경제학과 졸업

1958년 12월 상주고등학교 교사

1960년 경북 영주군 교육감에 당선(미발령)

1960년 10월 민주민족청년동맹(민민청) 경북간사장

1964년 3월 인민혁명당 중앙상무위원회 위원장

1964년 7월 인민혁명당 사건(1차 인혁당 사건)으로 체포됨. 반공법위반으로 3년 선고

1974년 4월 20일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으로 체포됨.

1975년 4월 8일 대법원에서 사형확정(대통령 긴급조치 위반, 국가보안법 위반, 내란예비음모, 반공법 위반)

1975년 4월 9일 사형집행

대구 칠곡현대공원에 안장



출처: 유가협 홈페이지(http://www.ugh.or.kr/)
출처: 김민희. 1993. 『쓰여지지 않은 역사』. 서울: 대동.

대구 칠곡 현대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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