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호-당시 35세

김길호-당시 35세

김길호(당시 35세)

1954년 1월 18일 김주하씨와 강옥순씨의 2남으로 전남 무안에서 출생
목포중학교 졸업후 부산으로 돈을 벌기 위해 떠나지만 실패
1972년 공군제대후 서울에서 장사를 했으나 실패
1977년 귀향
1979년 5월 우득례씨와 결혼, 슬하에 1남 1녀를 둠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에 참여 이후 기독교 농민회원으로 활동
1986~87년 7월 4일 마늘, 양파, 생산비 보장 및 전량수매 촉구대회때 선봉에서 활약
1987년 3월 3일 부정선거 규탄 및 선거무효투쟁의 선봉에 섰다가 오후 5시경 무안경찰에 잡혀 군화발, 자전거 체인
등으로 집단구타 당함(이로 인한 후유증으로 죽음에 이르게 됨)
1987년 12월 24일 구류 5일을 살고 풀려나옴. 이후 통원치료
1988년 3월 15~25일 광주기독병원 입원
1988년 3월 25일 병세가 호전되지 않은 절망적인 상태에서 끝내 운명
김길호 동지는 80년 광주항쟁 이후 기독교 농민회에 가입하여 활동하였고, 특히 86년 7월 4일부터 87년까지 무안에서 지속된 ‘농산물 (마늘, 양파 ) 제값받기 투쟁’에서 선봉대로서 열심히 투쟁에 참가하였다.

87년 12월 20일. 무안에서의 대통령선거 무효투쟁시 오후 5시경 무안읍에서 광주 방면으로 행진하다가 경찰이 논두렁에 동지를 쳐박고 집단구타하였다.

이후 경찰에 연행되어 5일간의 구류를 살았고, 구타로 인한 후유증으로 무안읍 유성병원을 거쳐 목포 성 콜롬반 병원으로 옮겼으나 계속 악화되어 88년 3월18일 광주 기독병원에 입원. 결국 회생을 하지 못하고 3월25일 “나는 할 일이 많은데...”라는 말을 끝으로 운명하였다.

국립5.18민주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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