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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혁-당시 21세

기혁-당시 21세

기혁(당시 21세)

1965년 2월 7일 전남 광산에서 출생.
1971년 아버지 기세문씨 통혁당 재건사건으로 수감(15년 복무)
1984년 광주 대동고 졸업.
전남대 의과대 입학
1985년 1월초 파쇼정권의 교육정책인 부당유급제 반대투쟁 중 행방불명.
1985년 1월 16일 무등산 바람재에서 변사체로 발견됨. 망월동에 가묘.
어린 나이에 부친이 통혁당 재건사건으로 복역하는 일을 겪었지만, 꿋꿋하게 자라 전남대 의대에 입학하였던 기혁 동지는 부친이 복역 중이기에 어려움이 있음을 이해하는 주위의 사람들의 만류에 대해, 부친의 복역이 운동을 기피할 이유가 되지 못하고 오히려 더욱 열심히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혁 동지는 대학 입학 후 탈반에 가입해 적극적으로 활동을 하였고, 당시 전남대 의대의 억압적인 분위기와 단 한 과목이라도 낙제 점수가 나오면 재시험의 기회를 주지 않고 무조건 낙제시키는 부당유급제 반대 투쟁의 과정 중 85년 1월초 행방불명되었다가 1월 15일 무등산 바람재에서 얼음덩이 시체로 발견되었다.



동지가 남긴 글


아버님께

아버님 안녕하셨습니까?

이제 날씨가 많이 풀렸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아침 저녁으로는 쌀쌀합니다. 지금이 감기에 거리면 잘 낫지 않는 그런 때가 아닌가 합니다. 몸은 편찮으신데는 없는지요.

아버님 내일 모레가 식목일입니다. 오늘은 갑자기 제가 어렸을 때 아버님과 삼촌이 산에서 큰 돌을 지게로 져다가 화단을 만들던 일이 생각납니다. 아버님께서 정성들여서 만들어 놓으신 그 화단에는 아카시아, 향나무를 비롯해서 목련, 무궁화, 동백 등과 대문 구실을 하던 사철나무 두 그루와 제 출생기념으로 심었다던 은행나무도 잘 크고 있습니다.

그리고 상당히 오래된 일이지만, 두 번째로 큰 나무는 중동이 부러져서 더 이상 키가 자라지 않고 오히려 옆의 가지들이 더 커서 지금은 그점을 보완해 주고 있습니다.

아버님 지난 3월 16일은 할머님의 여든 두 번째 생신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님께서 고모와 함께 영광에 다녀 오셨습니다. 할머님께서는 처음에는 어머니와 고모를 잘 알아보지 못하시다가 어머님께서 말씀을 하신 뒤에야 알아보셨답니다.

아버님께서는 편지때마다 저희들의 건강상태를 걱정해 주셨는데 그것은 아버님의 공연한 걱정에 불과한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도리어 아버님의 건강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런 곳에 계신 아버님께서 건강하시기를 바란다는 것은 너무 큰 기대이고 몸이 약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일 것입니다. 아버님께 면회갔을 때 그렇게 춥지도 않은 날씨인데도 불구하고 아버님께서는 소매 속으로 손을 넣으시고 몸을 자꾸 움추리시던 모습을 보면, 역시 몸이 약하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난번 저에게 보내신 편지에서 제가 가고 싶지 않다는 의대를 보내려 하는 것은 어머니의 지나친 욕심이 아닌가 하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것은 아버지가 약간 잘못 알아 들으신 것 같습니다. 제가 의대를 가고 싶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의대보다는 물리대같은데 더욱 제 마음이 끌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집의 형편을 보면 제가 의대6년, 수련의 3년간의 과정을 마친다는 것은 상당한 무리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습니다. 어머니께 말씀드렸더니 앞으로 3년이면 아버님께서 나오실텐데, 둘이서 벌면 너희들 삼남매 못가르치겠냐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들어보면 역시 어머님은 3년 후에 아버님이 전향을 하고 나오실 것을 믿어 의심하지 않는 모양입니다. 아버님 거기에 관해서는 잘생각하셔서 결정하실 일이지만, 우리 식구 모두는 어머님의 의견에 뜻을 같이합니다.

그렇다고 너무 무겁게 생각하실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대외적으로 유명한 아버님보다는 그저 평범한 업무에 시달리면서도 저희들에게는 따뜻한 그런 아버님을 더욱 바라고 또 원합니다.

아버님 지금은 밤입니다. 불을 안 땐 방이어선지 상당히 춥습니다.

낮에는 더워서 벗어버리더래도 주무실때는 옷을 있는데로 껴입으십시오,.

아버님 몸건강하십시오. 다음날에는 5월 5일 어린이 날에 편지가 들어갈 수 있도록 쓰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국립5.18민주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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