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기

강은기

강은기

1942년 전북 남원 쌍교리에서 부친 강요갑, 모친 진차정의 장남으로 태어남.
1956년 용성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남원중학교 입학
1958년 남원중학교 3학년 졸업 4개월 남기고 자퇴
1959년 남원의 인쇄소에 취업하여 활판 인쇄기술 배움
1960년 3월 30일 상경. 이후 응암동 나300호 공동체생활. 4월 19일 혁명의 대열에 참여함
1961년 5.16군사쿠데타 발발 후 실망하여 5월말 충북 보은 속리산 법주사 출가
1963년 환속하여 남원중학교 동창인 이해학과 만남. 다시 응암동 나300호 공동체생활
1964~1971년 을지로 인쇄골목에서 인쇄공으로 일함. 이시기에 흥사단, YMCA 등에서 류영모, 함석헌, 안병무 등을 만나고 수강. 개혁, 참여, 민중신학과 역사현실에 대한 성찰을 통해 시대사명에 동참함
1972년 유신쿠데타에 맞서 세진문화사 설립(이후 세진인쇄로 운영). 이후 70~80년대 줄곧 유신반대 반독재 민주화운동이 이루어지는 곳에 쉼없이 인쇄유인물을 제작하여 제공함
1973년 수도권도시선교사위원회(KMCO) 시위에 참가하여 긴급조치1호 위반으로 보름간 동부경찰서에 구금. 한통련 기관지 ‘민족시보’관련으로 중앙정보부에서 10일간 조사받음
1975년 5월 17일 함석헌선생 주례로 남원양씨 양희선과 결혼(슬하 1녀 1남)
1976년 3.1민주구국선언서 제작 건으로 성남경찰서 연행
1978년 인권운동관현 유인물 제작 건으로 서부경찰서 연행
1979년 허병섭 목사가 의뢰한 유인물 관계로 동대문경찰서 연행. 박형규목사의 저서 [해방의 길목에서]제작 중 중부경찰서 연행
1980년 ‘김재규 항소이유서’ 제작 건으로 구속. 5월3일 서대문구치소 수감. 김대중내란음모사건 관련으로 징역 3년 선고받고 1년 1개월 간 투옥. 이후 많은 사건 유인물 제작으로 연행, 구류 및 구속됨
1988년 9월 3일 한국인쇄문화운동협의회 설립. 초대회장이 됨
1995년 국민정치산악회 창립. 초대회장이 됨
2002년 5월 전북민주동우회 회장. 췌장암발병으로 백병원에서 입원치료 중 11월 9일 영면. ‘민주사회장’으로 장례 엄수 후 마석모란공원묘지에 안장
2005년 4월 민통련 창립 20주년 행사에서 공로상 수상

마석 민족민주열사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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