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호 한국 민주주의의 뿌리로서의 ‘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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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민주주의의 뿌리로서의 ‘민란’

이나미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2016년 거대한 촛불의 물결과 그것이 이룩한 정권 교체는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워싱턴포스트지는, 세계가 절망에 사로잡혀 있는 현 상황에 “한국은 민중의 힘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방금 전했다”고 하면서 이것이 ‘감동적인 이야기’인 까닭은 한국이 “미국의 지원을 받고 있던 독재정권을 갓 80년대 말에 민주주의로 교체한 나라란 점에서 그렇다”고 평했다. 1987년을 한국의 민주화가 시작된 해로 보는 것이다. 국내 학자들 중에도 적지 않은 수가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전 세계에서 시장주의가 힘을 얻고 금융자본이 판을 치며 정치적으로는 우경화의 위험이 커져가는 현 상황에서, ‘홀로 빛나는 민주주의’를 보여준 한국이, 과연 서구의 가르침으로 민주주의를 알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한가? 이러한 의문을 세계가 갖기 시작했으며, 우리도 같은 질문을 해야 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2018년 6월 7일 “한국 민주주의 100년, 세계적 물음에 답하다”라는 제목의 학술토론회를 열었다. 한국 민주주의의 시작을 1919년 3.1운동에서부터 보고자 한 것이다. 3.1운동 후 제정된 임시헌장은 우리나라가 ‘민주공화국’임을 선포했다. 이후 민주주의는 우리 사회에서 일관되게 주장되었고 마침내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그렇다면 1919년에 민주공화국에 대한 합의가 갑자기 이루어진 것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이는 분명 그 이전 오래 전부터 한국사회에 ‘민주적’ 신념에 대한 공감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일 것이다.

필자는 이에, ‘민란’에 주목하고자 한다. 흔히 아시아민주주의를 논할 때 유교의 민본사상을 언급하는데, 이는 지배층이 민에게 가르친 이념으로, 만일 그것이 세상을 뒤엎을 위험한 사상이었으면 그들이 가르칠 리가 있겠는가 묻고 싶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민란은 어지러운 것, 소요, 혼란이며, 폭동을 유발하는데 어찌 민주주의라고 볼 수 있는가 라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난(亂)’은 다스림(治)을 의미하기도 한다. “백성의 다스림은 옥사의 양사(두 말)를 알맞게 듣지 않음이 없으니(民之亂 罔不中聽獄之兩辭 『서경 권10』)”라는 구절에서 ‘난’은 ‘다스림’으로 해석된다.

직접적으로, 채침(蔡沈)은 ‘난치야(亂治也)’라고 하여 ‘난은 다스림이다’라고 해석하고 있다. 그렇다면 홍경래의 난은 홍경래의 다스림이며 민란은 민의 다스림, 민치, 즉 데모크라시인 것이다. 데모크라시(democracy)는 일본에 의해 ‘민주주의’로 번역되었는데, 본래는 ‘민주정’, ‘민주제’를 뜻하는 것으로, ‘민의 지배’란 측면에서 ‘민치’란 개념이 더 정확하다. 또한 민란은, 현대 한국사회의 민주항쟁이 그러했듯이 대체로 규율과 질서를 가지고 진행되었다. 물론 폭력이 뒤따르기도 했으나 그것은 대체로 가해자와 범죄자에 대한 처벌, 응징의 성격을 가졌다. 따라서 민란이 일어난 시점을 한국 민주주의의 기원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그렇게 되면 100년이 아니라 훨씬 더 긴 기간을 한국의 민주주의 역사로 볼 수 있다.

2016년 가을에 일어난 ‘촛불’을, 우리는 현재 ‘항쟁’으로 또는 ‘혁명’으로 부르지만 당시 주로 사용된 용어는 ‘집회’였다. 또한 우리가 현재 ‘민란이 일어났다’고 말한 당일, 민란의 주동자는 일기에 ‘향회가 열렸다’고 썼다. 성공한 난리는 혁명이요 실패한 난리는 말 그대로 난리가 된다. 민란이 난리가 되고 항쟁이 혁명으로 불린 것은 그것이 성공했느냐 실패했느냐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한 성공과 실패 여부는 역사의 심판에 달린 것이다. 이제 민란의 명예회복을 시킬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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