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래쉬 crash- 탐욕에 눈먼 인간들에게 던지는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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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래쉬 crash


- 탐욕에 눈먼 인간들에게 던지는 경고

글·김봉석 영화평론가/lotusidnaver.com


2010년 연말, 1박 2일에서 국내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과 함께 여행을 가는 기획을 마련했다. 한국에 온지 겨우 6개 월인 이도 있었고, 훌쩍 10년을 넘기고 한국인과 결혼한 이도 있었다. 강원도로 여행을 간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주어진 최고의 선물은 고향에 두고 온 정든 가족들과 의 만남이었다. 그들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이들은 가난했던 60년대 독일로 파견된 광부와 간호사의 모습을 떠올렸다. 혹은 70, 80년대 원양어선이나 중동 으로 일하러 나간 아버지들을 떠올리기도하고. 그런 정서적 동질감도 좋다. 한국이라는 나라에 찾아온 이방인들을 따뜻하게 맞아주는 마음을 갖는 것.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들 하나하나는 이방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한국에서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외국인노동자, 이주자들은 이제 우리의 일부가되었다. 우리가 미국을 보면서 흔히 생각했던 다양한 인종과 민족이 어울려 사는 곳이라는 개념이 이제 한국에도 적용되어 야 하는 것이다. 이미 농촌 지역에서는 외국인과 결혼하는 비율이 30%를 넘겼다고 한다. 결혼만이 아니다. 산업구조가 바뀌 면서 소위 3D 직종이라고 할 만한 일들에서 외국인 노동자의 비중도 점점 증가하고 있다. 단일 민족으로 이루어진 민족국가라는 신화에 사로잡혀 있던 한국은 이제 다민족, 다문화 사회라는 새로운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아니 이미 변화는 도래 했고 우리의 생각과 시스템을 정비해야 할 때다.

다민족, 다문화 시대를 맞아 봐두면 좋을 영화가 하나 있다. 2006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크래쉬>란 영화다. <크래쉬> 는 대도시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인종과 민족의 사람들이 이리저리 충돌하면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보여준다. 지방검사 릭과 아내 진은 외식을 나갔다가 흑인 청년 두 명에게 차를 강탈당한다. 집에 돌아온 진은 두려움 때문에 집 열쇠를 바꾸려고 수리공을 부르지만 멕시코인 대니얼이 방문하자 막연히 그를 의심한다. 방송국 PD인 카메론과 아내 크리스틴은 차를 타고 가다가 검문을 당하는데 백인경찰 라이언은 그들이 흑인이라는 이유만 으로 모욕을 준다. 파트너인 핸슨은 라이언을 인종차별로 상부에 고발해야 하지 않을까 고민한다. 이란에서 이주하여 잡화점 을 하는 파라드는 도둑을 맞아 망연자실한다. 그는 며칠 전 가게의 열쇠를 고치러 왔다가 다투었던 수리공 대니얼이 범인이라고 의심한다. 흑인 청년 피터와 앤쏘니는 지방검사 릭의 차를 강탈하여 도로를 달리다가 사고를 일으키고, 흑인 형사 그레이엄은 자신의 동생이 살해된 것을 발견하게 된다.

<크래쉬>는 수많은 인물이 씨줄과 날줄로 얽히면서 복잡한 모자이크를 형성한다. 그들은 저마다 다른 인종, 민족에 대해 편견과 오해를 가지고 있다. 백인 상류계급인 진은 히스패닉 여인을 가정부로 쓰면서도 유색인종에 대해 편견을 갖는다. 이란 에서 온 파라드는 자신을 이라크인, 테러리스트라고 부르는 사람들 때문에 화를 내지만 마찬가지로 흑인이나 히스패닉을 무시하고 혐오한다. 이란의 상류층인 자신과 달리 흑인과 히스패닉은 저급한 인간이라고 경멸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흑인들은 동양인을 업신여기고 동양인은 흑인을 무시한다. 그런 편견은 반드시 나쁜 사람들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흑인 부부를 검문하면서 모욕을 주는 라이언을 핸슨은 혐오한다. 시골 출신의 핸슨은 경찰이라면 마땅히 모두에게 공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혼자 시골길을 가다가 우연히 흑인 청년을 차에 태우게 되었을 때 그는 긴장하고 두려워한다. 이 불량한 흑인 청년이 강도가 아닐까, 라고 의심하는 것이다. 핸슨 역시 흑인은 위험하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도 미처 알지 못했지만 그의 무의식 속 깊숙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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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라이언 역시 사악한 인간은 아니다. 교통사고가 나서 위험한 상황에서 라이언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흑인 여성을 구해낸다. 인종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는 라이언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경찰로서 의 의무를 저버리지는 않는다. 결국 편견 이란 것은 어떤 계기와 경험을 통해서 일종의 학습을 통해서 가지게 된 것이다. 새로운 경험을 만난다면 혹은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진정 깨닫는다면 누구나 바뀔 수 있다. 처음에 라이언과 핸슨은 극과 극에선 사람처럼 보인다. 핸슨은 착하고 상식적인 경찰이고 라이언은 편견에 가득 찬 폭력적인 경찰이다. 하지만 그들의 간극은 그리 크지 않았다. 핸슨에게도 흑인은 위험하다는 편견이 숨어 있었고 라이언에게도 흑인은 나와 똑같은 인간이라는 마음이 깔려 있었다. <크래쉬>의 그들은 결코 완벽하지 않고 그 누구도 초월적이지 않다. 선입견과 편견이 있고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지배받으면서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편견이 숨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인정해야만 그것 을 바꿀 수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누군가에게 차별받는 이들도 다시 누군가를다르다는 이유로 차별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한국인이 해외에서 차별받는 것에 대해서는 민감하면서도 우리 안의 동남아인들에 대한 시선 은 차갑고 폭력적이다. 중국, 일본에 대해서도 무시하거나 경멸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생각한다. 우리와 그들은 다르다고. 하지만 바깥의 시선으로 보면 백인이 보기에는 비슷한 점이 더 많다. 우리가 보기에 스코틀랜드인과 잉글랜드 사람이 다를 게 없는 것처럼. 이런저런 차이를 보고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과 그럼에도 비슷한점에 주목하여 같다고 여기는 것은 단지시각의 차이일 수도 있다. 오히려 차별은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까? 지구인이라고 생각하면 우리는 모두 같지만 다른 점을 따지면 따질수록 우리는 서로 다른 인종, 민족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다 같은 인간이다. 피부색이 다르고 먹는 음식이 조금 다르고 생각하는 것이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세상이란 것은 그렇게 다른 사람들 다양한 생각과 습관을 가진 사람들이 어울려가면서 살아가는 곳이다. 외부에서 왔으니까 우리의 기준에 맞춰서 살아, 라고 강요하는 것은 분명히 폭력이다. 다름을 인정하면서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것이 평화롭고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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