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역사기념관

미술관, 현대 건축의 진정한 챔피언

미술관, 현대 건축의 진정한 챔피언 <2>
진화하는 미술관들

글·구본준 bonbonhani.co.kr

 

미술관이 현대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분야로 떠올라 건축의 풍향계 역할을 하게 된 이유는 새로운 시도와 파격을 실험하기 가장 좋은 장르이기 때문이다.
미술관은 처음 등장한 이래 거의 100년 동안 ‘하얀 상자’를 벗어나지 않았다.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 자체가 그대로 건물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20세기 중반 이후 미술관들은 이전 미술관 건축에 반기를 들기 시작했다. 단순히 미술작품을 보관 전시하는 곳이 아니라 작품 같은 기능을 하는 새로운 형태의 미술관 건축을 시도한 것이다. 건축에서 새로운 스타일이나 사조의 등장을 가장 먼저, 가장 대표적으로 시험하는 건물들은 십중팔구 미술관들이 됐다.
특히 건물 외관의 변화는 그야말로 혁명적으로 진행 중이다. 미술관들은 이제 건물 자체가 현대 미술품보다도 더 파격적이고 현란해졌다.
산티아고 칼라트라바의 밀워키 현대미술관이나 스페인 발렌시아의 예술과 과학의 도시, 다니엘 리베스킨트의 캐나다 로열 온타리오 박물관 등은 이제 모든 상상이 미술관 건축으로 구현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미술관 내부 전시공간의 변천

그러면 미술관 내부, 그러니까 전시공간은 어떻게 변하고 있을까?
미술관과 박물관의 외관이 놀랍도록 바뀌는 것과 달리 실제 내부는 오랫동안 큰 변화가 없었다. 미술관의 본질적 기능을 담당하는 전시 공간은 항상 하얀 벽들로 둘러싸인 네모난 방에 머물러 있었다. 이런 점 때문에 미술계에선 너무 건물 외관에만 신경을 쓰고 미술관의 기능 핵심면의 시도는 희생되고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오늘날 미술관은 거의 디스코텍처럼 놀다가 가는 공간으로 바뀌고 있고, 방문객들에겐 전시보다 미술관 안 카페나 아트숍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는 비판들이 많다. 존 암레더란 작가는 “이제 전시실은 그저 도록을 구입하기 위한 구실을 주는 공간으로 퇴보했다”라고 냉소하기도 했다.
이런 비판은 분명 사실이다. 지금의 미술관과 박물관, 기념관들은 틀림없이 전시 공간보다도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다른 부분들에 관심이 많이 치우쳐져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미술관 건축은 분명 화려한 외관 못잖게 이제 그 개념과 전시 방식, 내부의 구조면에서도 새로운 시도를 선보이며 진화를 거듭해가고 있다. 그 핵심은 바로 ‘동선’이란 개념이다.
전시를 중심으로 하는 뮤지엄 건축물들이 다른 건축물과 가장 다른 점은 그 어떤 건축물보다도 동선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미술관, 박물관, 기념관은 동선의 건축물이다. 다른 어떤 건물보다도 이용자들이 많이 걸어야 하는 건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술관 건축은 건물 외관이 얼마나 멋진가 못잖게 그 내부의 동선이나 계단의 디자인이 얼마나 새롭고 관객 편의적인가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문제는 이 동선 설계가 무척이나 어렵다는 점이다. 이런 동선의 매력은 건축주가 쉽게 만들어내기가 근본적으로 어렵고, 설계를 잘해도 겉으로 눈에 띄게 드러나는 것도 아니어서 건축가들은 고심하게 된다. 여기에 미술관이란 건물이 건축주 쪽에서 강하게 기능적 측면을 요구하는 건물인 점도 건축가들을 어렵게 만든다. 실제 사용자 쪽에서 불만이 가장 많은 건물이 미술관이다.
나선형 계단 자체가 전시장이 된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의 경우 그 파격적인 시도 때문에 우리는 지금 중요한 건축문화유산으로 높게 평가하지만 정작 미술관 쪽에서는 작품을 전시하기도 어렵고 관객들이 1층부터 맨 위층까지 걸어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와야 하기 때문에 많은 불만을 터뜨렸던 건물이다.
미술관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자 관객들이 미술관을 즐기는데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이 동선은 그래서 파격적인 변화를 주기가 근본적으로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미술관들은 새로운 관점에서 동선을 중심으로 내부 공간에 많은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미술관 건축의 가장 전통적인 내부 구조는 긴 복도식이다. 이는 궁전 등 옛 건축물을 개조한 고전적인 미술관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복도식과 함께 가장 보편적인 구조는 내부의 넓은 개방 공간 가장 자리로 전시공간을 배치하는 방식이다. 18~19세기 유럽 제국주의 시대 등장한 미술관들이 주로 채택한 구조다. 이 제국주의식 동선 구조는 권위와 웅장함을 강조하는 측면이 강하면서도 기능상 강점이 많아 많은 미술관들이 이 구조를 따라왔다. 지금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뮤지엄 건축물인 국립현대미술관과 국립중앙박물관이 모두 이 구조다. 가장 검증된 방식이란 점에선 안전하지만, 최신 건축물인 국립중앙박물관 등이 이 제국주의식 동선을 벗어나지 못한 점은 좀 아쉬운 측면이기도 하다.

동선의 개념과 형식을 깨는 새로운 시도
미술관 건축의 역사에서 중요한 분수령이 된 작품들은 그래서 이런 미술관의 보편적이고 고전적인 내부 구조와 동선에 대한 고정관념을 깬 건물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인들에겐 루브르나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처럼 널리 알려져 있지 않지만 건축 전공자들에겐 현대 건축사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로 꼽히는 독일 슈투트가르트 미술관이 대표적이다. 영국 건축가 제임스 스털링이 설계한 이 미술관은 건축사에서는 양식 면에서 유럽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의 대표작이란 점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근대 건축과는 다른 현대 건축의 가장 중요한 특성을 보여주는 건물이란 점에서도 중요하다. 근대 건축이 건물의 형태를 중시하면서 그 자체로 들어선 자리에서 완결성을 갖는 건물을 추구했던 것과 달리 현대 건축은 건물과 주변 환경과의 관계를 중시하면서 건물과 도시의 맥락, 거리와의 연관성을 중요하게 여긴다. 슈투트가르트 미술관은 이런 현대건축의 특성을 동선의 개념과 연관시켜 새로운 동선 형식을 만들어냈다.
슈투트가르트 미술관은 건물이 들어선 기존 도시 거리의 흐름이 그대로 미술관 안팎으로 통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건물 자체의 차별성보다는 거리와 조경 속에 녹아든 건물을 추구했다. 외부 조경과 건물이 명확하게 구별되지 않고 이어지고, 외부 동선과 내부 동선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구조다. 스털링은 바깥 공간인 정원을 산책하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건물 내부로 관통되도록 경사로를 활용했다. 지금이야 대부분의 공공건물들이 바깥과 안이 유기적으로 하나가 되도록 설계하지만 이 건물이 들어선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이런 건물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외부의 조경과 건물이 모두 건축으로 구분 없이 이어지는 미술관이 드물었던 시절이어서 이 건물의 의미는 컸다.
현대 건축계 최고 스타 중 한명인 다니엘 리베스킨트의 출세작 베를린 유대인박물관은 전시 공간 동선 자체가 건물의 핵심이 되는 시도로 주목받은 건물이다. 다른 기념관이나 전시장과 달리 이 건물은 건물 자체에는 외부 입구가 없다. 이 건물을 들어가려면 이 박물관과 붙어있는 옆 건물 베를린 박물관을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다.
왜 이렇게 했을까? 이렇게 옛 건물을 통해 들어가는 입구 처리로 이 건물이 추구하는 바를 극명하게 드러내기 위해서다. 유대인을 학살한 독일 옛 역사를 상징하는 박물관 건물에 새 박물관 입구를 만들어 과거의 역사를 직시하고 교훈을 깨달아야 새로운 역사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인식시키려는 동선이다. 유대인을 학살한 독일이 과거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인식으로 새로운 미래를 만들겠다는 인식을 보여준다.
내부 역시 기존 박물관이나 미술관과는 전혀 다르다. 날카롭게 예각으로 꺾이는 동선, 좁고 기울어진 벽 등 상징적이고 감정적인 연출로 역사의 아픈 장면을 형상화했다. 박물관에 전시한 유물이나 기록물보다도 건물 자체가 역사의 느낌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관객들과 감정을 주고받는다. 건물 내부 홀로코스트 탑은 관객 한두 명만 들어가게 한 다음 문을 닫아 어두운 수용소 같은 공간에 잠시 머물게 한다. 감상이 아니라 체험을 하게 만드는 이런 시도와 구성으로 이 박물관은 새로운 유형의 뮤지엄 건축과 콘셉트를 보여줘 높은 평가를 받았다.

미술관의 개념 자체를 바꾸는 시도들
단순히 동선이나 전시 공간의 구성을 바꾸는 차원을 넘어 미술관 자체의 개념을 바꾸는 미술관들도 등장하고 있다. 미술관이란 현대 사회의 필수 공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는 도전들이다.
미술관은 훌륭한 문화유산들을 골라 소장하고 전시하는 건물이지만, 바로 이런 근본적인 속성 때문에 부작용도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미술관들이 어떤 작품을 고르고 소장하느냐가 곧 이데올로기와 권력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미술관에 소장한 작품들만 중요하고 훌륭한 것은 결코 아닌데 기존 미술 권력들이 중시하는 작품들만 수집하고 이를 다시 대중들에게 걸작으로 교육하면서 미술품을 줄 세우고 등급을 만들어버린다는 비판이다. 미술관은 미술품에 가치를 부여하는 곳이다. 그러나 그 가치는 결코 객관적일 수는 없다. 철저하게 국가적 관점이나 기존 권위의 토대 위에서 작품을 고르고, 그렇게 고른 작품들을 최고의 작품으로 추켜세워 미술사를 정리한다. 그리고 전시를 통해 이렇게 만들어낸 권위는 확대 재생산되어 관객들에게 주입된다. 바로 이런 점들이 미술관이 가질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문제로 늘 지적되어왔다. 이런 미술관의 주입식 권위 교육에 문제를 제기하는 미술관이 있다. 독일의 작은 시골 도시에 지은 홈브로이히 박물관이다.
이 박물관은 전시 방식이 기존 미술관들과는 전혀 다르다. 우선 건물들이 자연 속에 잘게 쪼개져 띄엄띄엄 자리 잡고 있다. 관객들은 넓게 펼쳐진 풀밭 중간 중간에 있는 전시관들과 야외에 전시한 작품들을 산책하듯 돌아다니면서 만날 수 있다. 일반 미술관이라면 작가 연표와 미술사적 의의에 대해 설명하는 해설표를 붙여놓지만 홈브로이히 박물관에서는 작품에 대해 아무런 설명도 없다. 한마디로 기존 미술사에 대한 일체의 지식, 곧 고정관념을 떨쳐버리고 작품 자체를 즐기라는 것이다. 고대인지 현대인지, 동양인지 서양인지에 대한 분류 같은 일체의 강박이나 관행을 따르지 않고 오로지 스스로 느낀대로만 작품 감상에 집중하라는 주문이다. 그렇다고 전시 작품들이 일반 기준으로 무명이거나 수준이 낮은 것도 전혀 아니다. 유명 작가들의 값비싼 작품들이다.
이 미술관이 이런 혁명적인 시도를 한 것은 기존 미술관들이 전시 공간을 나누고 전시 비중을 달리해 작품에 서열을 매기는 방식이 예술에 대한 진정한 자유로운 평가를 가로막는 부작용을 일으킨다는 점 때문이다. 그래서 이곳을 찾은 관람객들은 미술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나 권위적인 전시에 주눅들 필요 없이 혼자 편하게 자기 마음대로 돌아다니며 작품을 만나고 감상할 수 있다.
스위스에 있는 샤울라거는 미술관이면서도 미술관이 아닌 새로운 미술공간으로 미술계에 파장을 일으켰다. 독일어로 ‘보다’를 뜻하는 ‘샤우’와 ‘보관하다’는 ‘라거’를 합쳐 만든 샤울라거는 이름 그대로 ‘보는 창고’를 지향한다.
샤울라거는 기존 미술관들이 갖고 있는 수장 기능과 전시 기능이 따로 나뉘어져 있는 것을 깨고 창고 자체가 전시장이 되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했다. 스위스를 대표하는 유명 건축가인 헤르초크와 드 뫼론 콤비가 설계한 샤울라거는 건물 외관이 어떤 건물인지 추측조차 어려울 정도로 독특하다. 샤울라거의 성격 자체가 그동안 없었던 새로운 콘셉트이기 때문에 건물 역시 기존 미술관과는 전혀 다르면서도 창고처럼 밋밋하지 않은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지어졌다.
스위스의 유명 미술품 콜렉터인 에마뉴엘 호프만이 만든 이곳은 미술관이 본질적으로 ‘미술품의 무덤’이 되는 한계를 극복하려는 취지로 만들었다. 미술관은 수많은 작품들을 소유하지만 전시 공간의 부족으로 모든 작품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극히 일부만이 전시를 통해 관객들과 만날 뿐, 절대 다수의 작품들은 오히려 미술관에 소장되는 순간 수장고에 들어가 관객들을 만나기가 더 어려워지는 모순적인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에마뉴엘 호프만 재단도 비슷한 고민을 해야 했다. 많은 미술품을 모았지만 전시회가 아니면 대부분 창고에 처박아 둘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수장고와 전시장을 하나로 합치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채택해 샤울라거를 만들었다. 건물 전체를 작가별, 또는 시대별로 구별되는 수많은 방들로 만들고, 작품을 이곳에서 보관하면서 전시를 기획하면 그 자체를 전시장으로 개방하는 것이다. 평소에는 창고로 쓰면서 전시회 때는 약간의 조정만 하면 바로 전시장이 될 수 있게 설계했다. 이런 혁명적인 발상으로 샤울라거는 비록 공공미술관은 아니지만 새롭고 독특한 미술공간으로 전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글 구본준 <한겨레> 대중문화 팀장, http://blog.hani.co.kr/bonb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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