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역사기념관

비극에서 피어난 놀라운 건축들

비극에서 피어난 놀라운 건축들

 

글·구본준 bonbonhani.co.kr

 

 

1941년 11월,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이 작은 도시 코번트리를 방문했다. 주변을 돌아보는 처칠의 얼굴은 침통 그 자체였다. 2차대전이 한창이던 11월14일 밤 독일군의 공습으로 코번트리의 자랑이자 영국을 대표하는 건축물로 꼽히던 성 마이클 성당은 순식간에 폐허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11세기에 지어져 900년 넘게 굳건히 자리를 지켜왔던 웅장하고 아름다운 성당의 위용은 오간데 없이 사라졌고, 벽과 탑 일부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전쟁이란 초 비상상태에서 나라를 이끌던 처칠이 직접 파괴 현장을 찾아갔을 정도로 성 마이클 성당의 붕괴는 당시 영국에 큰 충격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5년이 더 지나 성당이 파괴된 지 9년이 흐른 1950년, 코번트리는 드디어 성당을 새로 짓는 작업에 착수했다. 코번트리의 자랑이자 상징이었던 성당을 다시 짓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코번트리는 무너진 옛 성당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새 성당을 짓는 설계 경쟁공모를 하면서 남은 탑을 보존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다양한 공모안 중에서 당선된 건축가는 경 칭호를 받은 배질 스펜스였다. 스펜스는 폐허가 된 성당 바로 옆에 붉은 돌로 성당을 짓고, 이전 성당의 폐허는 그대로 남겨 공원으로 꾸미는 디자인을 내놨다. 파괴된 뒤 9년을 기다려 짓기 시작했던 것처럼 짓는 것도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 공사를 시작한 지 12년만인 1962년, 벤저민 브리튼이 작곡한 <전쟁 레퀴엠>이 축성식날 처음으로 연주되는 가운데 폐허가 된 옛 성당과 새로 지은 성당이 한 몸이 되는 독특하고 묘한 새로운 건축물이 완공됐다. 파괴된 옛 성당과 깔끔한 새 성당은 서로를 돋보이게 해주며 묘한 조화를 이뤘다. 사람들은 유서 깊은 대성당이 파괴된 아쉬움을 새로운 랜드마크의 등장으로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었다.

배질 스펜스의 새 성당은 파괴된 역사의 현장을 그대로 보존함으로써 폐허도 건축의 일부로 받아들인 새로운 건축이었다. 이런 의미 때문에 새 성 마이클 성당은 20세기 건축의 주요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건축과 가장 반대되는 것이 파괴지만, 이 성당은 파괴를 오히려 건축으로 끌어안았다. 파괴가 만들어낸 건축, 파괴를 건축으로 승화시켜 건축의 영역을 확장시킨 새로운 건축이었다.

파괴가 낳은 건축물, 빌헬름 황제 기념 교회
이 성 마이클 성당과 떼어놓을 수 없는 또 다른 건축물이 있다. 베를린에 있는 빌헬름 황제 기념교회다.
빌헬름 황제 기념 교회는 독일 최대 도시 베를린을 상징하는 건물이다. 100미터가 넘는 높은 첨탑이 유명한 이 교회는 그러나 원래의 건축적 가치로 보면 성 마이클 대성당과 비길 바가 못 되는 건물이다. 1895년에 지어져 수백 년이 넘는 연륜을 지닌 유럽의 유명 성당들에 견주면 거의 새로 지은 건물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 건물이 성 마이클 성당 못잖은 건축적 의미를 지니게 됐고, 유명세로만 보면 더욱 유명한 스타 건물이 됐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이 교회 건물도 파괴가 낳은 건축물이자 옛 건물과 현대건물이 하나가 된 특별한 건축물이 되었기 때문이다.

2차대전으로 독일 역시 연합군의 폭격을 받아 오래된 건물들이 상당수 파괴됐다. 빌헬름 황제 기념교회는 그 대표적인 피해 사례였다. 여러 번에 걸친 폭격으로 높은 주탑은 윗부분이 날아가고 중간에는 커다랗게 구멍이 뚫려 그야말로 흉측한 몰골이 되어버렸다. 가장자리 탑들은 아예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다. 홀로 남은 주탑만 부러진 연필처럼 남아 주변 건물들까지 모두 사라진 베를린 도심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남게 됐다.
전쟁이 끝난 뒤 베를린 시는 초토화된 시내를 새로 정비하기에 바빠 무너진 이 교회는 한동안 도시 한복판에 처참한 모습으로 방치되어 있었고, 시민들은 ‘속 빈 이빨’이란 아름답지 못한 별명으로 불렀다. 폐허가 된 교회는 그 자체로 2차대전의 끔찍한 상징이었다. 어느 정도 전쟁 피해를 복구한 뒤 베를린시는 이 교회의 처리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시가 내린 결정은 교회 잔해를 아예 없애버리는 것이었다. 어차피 복구가 불가능한 상태였고, 그대로 놔두기엔 너무나 흉물스러웠던 탓이다.

그런데 시민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처참한 교회 폐허야말로 중요한 역사의 현장이자 비극적인 역사가 다시 되풀이되지 않도록 상기시키는 중요한 증거물이므로 반드시 보존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쏟아졌다. 시민들은 서명운동을 펼쳤고 수만 명이 서명에 참여했다. 결국 철거는 백지화되고 파괴된 기존 교회를 보존하면서 새 교회를 짓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교회 설계를 맡은 이는 당시 베를린을 대표하는 건축가로 꼽혔던 에곤 아이어만이었다. 아이어만은 신념이 분명하고 독특한 건축가였다. 극단적인 용어를 쉽게 써대는 독설가였고, 건축가면서도 건축이 신이 만든 자연을 변형시키기 때문에 “건축이란 기본적으로 끔찍한 것”이라는 지론을 가졌던 이였다. 자기가 죽으면 들어갈 관을 직접 디자인하기도 했던 사람이다. 좌우지간 교회 설계를 맡은 아이어만은 애초 부서진 교회를 없애자고 주장했다. 하지만 베를린시가 시민들의 여론에 밀리면서 그도 원래 생각과는 다르게 옛 교회 옆에 새 교회를 짓게 됐다.

1957년 시작한 새 교회 프로젝트는 1963년 완성된다. 영국 코번트리 대성당이 완공된 지 꼭 1년 뒤, 베를린에도 똑같이 전쟁 폭격으로 폐허가 된 교회 옆 새 교회가 들어섰다. 하지만 코번트리 새 성당이 기존 성당과 최대한 조화를 이루는 방식을 택한 것과 달리 빌헬름 황제 기념교회 새 건물은 뾰족탑 형식의 전형적인 옛 교회와는 가장 대비되는 모습으로 등장했다.

아이어만은 새 교회를 극도로 추상성을 강조하는 모더니즘 건축물로 디자인했다. 옛 교회 옆에 유리벽돌로 표면을 처리한 육각형 탑과 팔각형 교회 본당, 그리고 세례당을 배치했다. 느낌과 모양이 완전히 상반된 옛 교회와 새 교회가 나란히 있는 모습은 한번 보면 절대 잊을 수 없는 강한 인상을 남긴다. 이런 과감한 디자인 때문에 빌헬름 황제 기념교회는 걸작이란 극찬과 졸작이란 비판이 공존한다.

평가가 어떻든 전쟁의 아픔을 더욱 확실하게 보여주는 동시에 베를린이란 도시의 중요한 볼거리로 만든다는 의도를 멋지게 충족시킨 것만은 확실하다. 그런 점에서 아이어만의 교회는 분명 성공작이었다.

  빌헬름 황제 기념 교회와 성 마이클 대성당은 또한 묘한 연결고리로 서로 이어진다. 빌헬름 황제 기념교회 옛 건물에는 그리스도 상이 있는데, 이 그리스도상 옆에 장식한 십자가를 영국 코번트리 성당에서 가져온 대못으로 설치했다.

고베 대지진과 종이로 지은 교회
성 마이클 성당과 빌헬름 황제 기념 교회가 모두 전쟁이 만들어낸 참사에서 탄생한 건물들이라면, 전쟁 못잖은 참사에서 태어난 또 다른 놀라운 건축이 있다. 공교롭게도 이 건축물 역시 교회 건물이고, 파괴와 건축이 만난 흥미로운 사례다.

1995년 전 세계를 경악시켰던 일본 고베 대지진은 무려 5500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8만여 가구를 파괴한 끔찍한 비극이었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현대 건축에 이야기 하나를 보태기도 했다. 일본의 건축가 반 시게루의 대표작이 된 ‘다카토리 교카이 가톨릭교회’가 이 지진으로 인해 지어진 것이다.

고베 대지진으로 도시 주요 시설이 붕괴되는 바람에 집과 가족을 잃은 이재민들을 위한 공간들이 필요했다. 특히 교회처럼 사람들이 함께 모여 의지하고 충격을 극복할 공동체용 건물들은 더욱 절실했다. 하지만 아무리 임시시설이어도 사람들이 쉴 수 있는 수용 공간을 짧은 시간 안에 뚝딱 짓기란 실로 어려운 일이었다. 최대한 싸게 최대한 간단한 기술로 최대한 환경적인 건물을 짓는 것을 추구해온 반 시게루는 자기의 장기를 활용해 멋지고도 효과적인 대안을 만들어냈다.

반 시게루의 장기는 바로 ‘종이’로 집을 짓는 것이었다. 종이를 건축용으로 쓴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워보이지만 잘만 가공하면 예상 이상의 강도를 견뎌낸다. 이런 종이의 속성을 활용해 새로운 소재의 집을 시도해온 반 시게루는 지진으로 무너진 다카토리 가톨릭교회를 대신해 사람들이 기도할 수 있는 새 교회를 종이로 지었다. 두툼한 종이 파이프 기둥을 줄지어 세우고 테플론으로 코팅한 천을 덮어 교회를 짓는 데 걸린 기간은 단 5주. 특별한 건설 장비도 없이 건설회사들이 지원한 재료들과 자원봉사자 100여 명의 힘만으로 완성했다. 비록 수용 인원이 80여 명에 불과한 작은 임시 교회였지만 지진으로 커다란 충격을 받은 이들을 위한 곳으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반 시게루의 종이 교회가 놀라웠던 것은 그 소재만이 아니었다. 더욱 인상적이었던 것은 건축적 아름다움이었다. 가장 흔한 소재로 가장 단순한 모양으로 디자인했는데도 다른 건물들에선 느낄 수 없는 특별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반 시게루는 대량 생산 대량 소비되는 건축자재로 천편일률적이고 많은 자재를 필요로 하는 과다한 현대 건축의 시스템에 근본적인 의문을 가진 건축가다. 그가 종이라는 소재를 탐구한 것은 그런 주류 건축 시스템에 대한 저항이자 대안 모색이었다. 지진이란 특별한 상황에서 더욱 빛을 발한 다카토리 종이 교회는 반 시게루의 철학을 보여주는 걸작인 동시에 파괴가 신개념 건축의 계기로 작용한 특별하면서도 흥미로운 사례였다. 비극의 현장에서 탄생한 이 놀라운 건축물은 현대건축사에 남는 일화가 됐다. 오랫동안 인구에 회자된 이 교회는 2005년 임무를 다하고 해체되어 타이완으로 옮겨져 다시 조립되어 새로운 이야기를 하나 더 보탰다.

빌헬름 황제 기념 교회와 성 마이클 대성당, 다카토리 교카이 가톨릭교회는 역사와 사건과 이야기를 담아 기념하는 건축물에 그동안 없었던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했다. 파괴된 잔해를 그대로 건축으로 받아들이는 이런 방식은 기존 기념 건축물들에선 볼 수 없었던 콜럼부스의 달걀 같은 놀라운 시도였다. 파괴는 안타깝지만 건축의 일부로 승화될 수 있음을, 그리고 파괴된 것도 나름의 아름다움을 지닌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새 지평을 연 건물들이다.

 

글 구본준 <한겨레> 문화부 기자, http://blog.hani.co.kr/bonb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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