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역사기념관

영광과 상처가 공존하는 곳,앵발리드와 군사박물관

영광과 상처가 공존하는 곳,


앵발리드와 군사박물관


박신의 경희대 경영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질문
  프랑스 파리에 소재한 군사박물관(Musee de l`Armee)은 일반적으로 앵발리드(Invalide)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자면, 앵발리드 내에 군사박물관이 있는 셈이다. 군사박물관은 군대와 전쟁에 관련한 컬렉션과 자료들을 모아 근대에 들어서 기반시설로 만들어낸 것이고, 앵발리드는 루이 14세 이래 군사기관의 형태로 이어져 온 장소인 것이다. 따라서 박물관 자리는 바로 군사문화와 역사가 남아있는 장소로 지정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기념관이 위치하는 데는 역사적 장소(site)를 입지조건으로 한다는 원칙이 여기서 다시 한번 확인된다. 게다가 나폴레옹이 나왔다는 군사학교 (Ecole Militaire, 에꼴 밀리테르)도 앵발리드 서남쪽에 루이 15세 시대인 1751년에 지어졌으니, 이 부근은 프랑스의 국가적 권위와 영광을 기리기 위한 역사적 장소가 되는 셈이다.
  앵발리드란 상이군인 혹은 부상당한 군인을 뜻하는 말인데, 1671년 루이 14세가 왕국을 위해 부상당한 퇴역병사들의 안식처로 건립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안식처라 하지만, 그 자체가 왕의 영광과 위엄을 드러내기 위한 또 다른 장치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 규모와 면적에서 앵발라드는 단일 건축물로서는 센느 강 남쪽에서 가장 큰 기념물이 된다. 실제로 파리에서 가장 화려한 다리라고 하는 알렉상드르 3세 다리를 건너 센느 강 남쪽으로 접어들면, 앵발리드는 광활하게 펼쳐진 잔디 광장을 앞에 두고 황금 돔 성당을 중심으로 우뚝 서 있어 그 시각적 화려함과 장대함이 가히 압도적이다. 특히 관광객에게는 그 화려하고 장대한 돔 건축물에 나폴레옹 무덤이 있다고 해서 더욱 유명한 곳이다.
  하지만 돔 성당은 1676년 앵발리드가 완공된 이후 1677년에 성당 건축을 시작하면서 주어진 것이다. 그것은 결국 돔 성당과 작은 규모의 군인들을 위한 성당인 생 루이 데 쟁발리드 성당으로 나뉘어 드러났다. 앵발리드가 이렇게 규모를 갖추어 본격적으로 운영이 시작된 시기는 17세기 말인데, 상이 군인들을 중심으로 거대한 공동체가 이루어지면서 한편으로는 전쟁과 군사의 역사가, 다른 한편으로는 전쟁에 대한 종교적 치유가 공존하는 구조로 남게 되었다. 이 곳에 상이군인이 모여 들 때 최고 4,000명까지도 입주했다고 하는데, 이들은 이 곳에서 재활을 위해 타피스트리 직조기법을 배우거나 구두 수선과 채색술 등의 기술을 연마하면서 그들 스스로의 문화를 만들어가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앵발리드는 거대한 중정(中庭)을 지닌 마치 수도원 같은 건축 구조를 갖고 있다. 그러나 그 규모에서의 웅장함 때문인지, 다시 보면 거대한 요새와도 같은 구조다. 지금은 텅 빈 안마당으로 상이군인들이 서서히 움직이며 구두를 짓거나 카페트를 짰을 모습을 생각하니 묘한 회한에 젖게 된다. 인류 역사에서 전쟁이라는 것이 갖는 의미를 생각하면, 돌연 모든 것이 허망하다는 생각으로 돌아오게 되는 그런 느낌 같은 것이다. 부상당한 군인들에게 이 공간은 전쟁을 영광의 역사로 기억하게 만들어주는 곳이었을까? 그들 삶의 손상된 부위를 보상해 줄 국가와 제국의 영광은 온존한 것일까? 어쩌면 전쟁과 권력의 모순은 정당성과 죄의식을 동시에 갖기 때문에 불가피한 것이 아닐까? 세계 최대 규모의 컬렉션과 공간을 자랑한다는 이곳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어떤 영광의 증표일까, 아니면 영광의 희미한 그림자일까, 아니면 인간의 욕망의 역사와 흔적, 그리고 그것에 대한 회한과 종교적 위안일까......
풍경
  앵발리드의 전시공간은 크게 셋으로 구성된다. 하나는 처음에 상이군인의 안식처로 지은 요새 모양의 건물을 자리한 군사박물관이고, 다른 하나는 중앙에 놓인 돔 성당, 그리고 쌩 루이 데 쟁발리드 성당이다. 군사박물관은 전체 건물의 동관과 서관으로 나뉘며, 무기와 갑옷, 투구를 비롯한 각종 전쟁 관련 유물과 전쟁의 역사를 보여주는 전시로 이루어져 있고, 돔 성당에는 나폴레옹 묘가 안치되어 있으며, 동관과 서관 사이의 중정 가운데 위치한 쌩 루이 데 쟁발리드 성당에는 적군으로부터 노획한 깃발을 회랑 안쪽에 진열해 놓고 있다.
  대체로 사람들은 나폴레옹 무덤에 대한 호기심 때문인지 일단 돔 성당으로 발길을 향한다. 필자 역시 그 호기심의 정도가 크게 다르지 않아 일단 돔 성당으로 들어섰다. 들어서자마자 한눈에 100미터가 넘는 천장과 함께 넓게 트인 공간을 접하게 된다. 성당의 중앙을 차지하는 돔 천장에는 아름다운 천장화가 그려져 있고, 바로 그 아래로 황제의 묘소가 놓여 있다. 성당 중앙을 파내어 지하에 안치된 나폴레옹 관은 위에서도 내려다 볼 수 있다. 관 주변으로 초록색 대리석으로 만든 제단이 설치되어 있고, 중앙의 안치대 위에는 황제의 문장을 지니고 있는 나폴레옹의 조각이 새겨져 있다.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숨을 거둔 나폴레옹의 묘를 옮긴 것은 1840년이고, 1861년 모소 공사를 한 후 이곳에 영원히 안치되었다고 한다. 어쨌든 황제는 애초 전쟁에서 목숨을 빼앗긴 병사들에게 바쳐진 최대규모의 성당에 홀로 화려하게 누워있는 셈인데, 그러니 성당의 자비와 사랑이 국가적 영웅과 권력에게 자리를 내어준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제 군사박물관으로 발길을 옮기면, 세계 전쟁의 역사와 프랑스 해방운동 시기를 보여주는 서관과 루이 14세부터 나폴레옹 3세 시대까지의 프랑스 군대사를 보여주는 동관으로 이어지게 된다. 서관의 시작은 고대로부터 17세기까지의 서유럽 전쟁의 역사를 보여주는 각종 무기와 갑옷, 투구 등이 전시되어 있으며, 다시 프랑스와 1세 전시실과 앙리 4세 전시실, 루이 13세 전시실 등 왕조에 따라 전시실이 구분되어 있다.
  전시 방식은 유물을 진열하는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그러나 모든 것을 문화와 예술의 언어로 풀어 말하는 프랑스식 어법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일테면 프랑스가 중세 이래 전쟁을 벌였던 각국의 무기와 갑옷, 투구들을 일종의 민속학적인 관점에서 보여주는 방식이나, 군대가 사용한 각종 문장(紋章) 디자인을 보여주는 경우, 그리고 프랑스 국가에 대한 칭송을 담는 문구의 타이포그래피를 보여주는 방식, 그리고 전쟁을 기옥한 대형 역사화를 전시하는 경우이다. 이런 전시방식이 갖는 장점은 유물을 화석화된 기억의 장치로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문화로 재해석하게 만드는 측면을 갖는다는 데 있다. 실제로 기념관이란 기억을 새롭게 해석하고 오늘의 삶으로 재구조화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데 그 중요한 몫이 있기 때문이다.
  서관 2층에서 시작되는 1차 세계대전 전시실과 2차 세계대전 전시실은 전쟁과 군대, 무기의 현대화와 더불어 결과한 유물과 영상자료로 구성된다. 그 가운데 2차 대전 시기의 레지스탕스의 활약을 중심으로 해방운동 시기만을 특화시켜 마련한 전시실은, 프랑스가 보존하고 내세우려는 국가적 자존심과 이념의 정당성을 드러내는 장소이기도 하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군사박물관의 존립 근거가 바로 이 시기를 정점으로 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서관에서 나와 정원을 가로질러 동관으로 건너가면 루이 14세 시대부터 20세기까지 각 부대를 상징했던 깃발과 부대의 상징물 등을 전시하는 뛰렌느 전시실이 나온다. 이곳에는 17세기에 앵발리드를 건립하기 위해 작성한 설계도가 전시되어 있고, 앵그르의 왕좌에 앉아있는 나폴레옹 초상화도 전시되어 있다. 2층에 있는 불로뉴 전시실은 프랑스 대혁명과 나폴레옹 황제를 중심으로 한 곳으로, 앙시앙 레짐(Ancient Regime), 즉 구체제 왕조시대부터 19세기 중반 제2공화국에 이르는 군사역사 관련의 전시물을 보여준다. 약 20여개의 전시실에 걸쳐 격동기였던 1789년부터 1815년까지의 프랑스의 해외 원정과 관련된 유물을 관람할 수 있다.
앙티 모뉴망
  전시실을 나와 중정에 닿아 있는 긴 복도를 마치 수도원을 걷듯 천천히 거닐다보면, 16세기에 주조되었다는 대포와 19세기에 사용되었다는 실물 크기 대포들을 길고 긴 동선을 따라 볼 수 있다. 크고 작은 대포들이 무수히 전시되어 있지만, 더 이상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고물로 되어버린 대포의 행렬은 사뭇 덤덤하다. 대포의 낡은 세월의 색깔이 앵발리드 복도에 드리운 오랜 시간의 그림자와 잘 어울려 보인다. 대포는 이제 기능을 상실한 채, 한 장의 낡고 오래된 사진과도 같은 존재처럼 비친다. 그저 ‘물건’으로만 보여줄 뿐이라는 점에서 박물관이라는 것에 대한 역사성의 쇠퇴 혹은 기억의 껍데기라는 혐의가 다시 등장하는 것이다. 그러니 권력이란, 국가란, 제국이란 것도 박물관에서는 ‘잠자는 숲 속의 공주’에 불과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 저런 생각을 하며 중정으로 나와 문득 시선을 돌리면, 2층 복도에 서 있는 거대한 나폴레옹 조각상을 우연히 발견하게 된다. 나폴레옹은 그 넓디넓은 안마당을, 아무도 없는 적막한 그곳을 무심히 혹은 공허하게 바라보고 서 있다. 나폴레옹은 체구가 작은 인물이었는데, 그의 묘소와 기념조각은 거인의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흔히 기념관이 기념비성을 강조하기 위해 묘사하는 거대주의 어법은 어디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 규모의 거대함은 더 이상 영웅의 위대함과 절대성으로 비쳐지지 않는다. 프랑스가 이곳에서 드러내려는 국가주의 이념의 정점은 프랑스 대혁명과 나폴레옹, 그리고 2차대전 시기의 해방운동으로 제안된다고 하겠다. 그러나 그 세 개의 정점이 박물관에 한 자리에 모이게 되면서 모순의 관계로 된다. 국가주의와 영웅주의가 실제로는 민중의 역사적 의미와 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군사박물관은 바로 그런 모순과 역설을 성찰하게 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군사박물관은 기본적으로 죄의식을 갖고 있는 공간이다. 군대의 역사, 전쟁의 역사를 유물로 보관해야 하는 것이 갖는 역설, 다시 말하면 국가의 힘과 제국의 확장이 살상과 폭력을 근거로 하는 것이되, 그것은 늘 애국과 수호의 이념으로 포장되도록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단순히 기념관의 성격을 말하는 ‘외침을 극복하고 민족의 자주와 독립을 지켜온 한민족의 국난극복사와 국가발전사에 관한 자료를 수집·보존·전시하고, 이를 조사·연구하게 함으로써 민족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국민의 투철한 민족정신을 선양하며 올바른 국가관을 정하기 위하여 설립된 법인이다.’는 규정은 다시 생각해 봐야 할 담론이다.
  실제로 박제화 된 유물과 기억만으로는 민족의 정체성과 국가관 정립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박물관의 전시기법과 말하기 방식은 실제 전쟁을 체험한 관람객이라면 몰라도, 일반인이 유물을 통해 전쟁의 정황을 읽어내기 어렵게 만든다. 무수한 무기의 나열, 전투복의 패션과 양식, 그리고 더욱 끔찍한 것은 마네킹으로 전쟁의 상황을 재현해 놓은 디오라마 방식의 재현, 이런 것들로는 결코 역사와 대화를 나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의 전쟁기념관을 비교해 본다. 천편일률적인 디오라마 방식을 통해 전쟁과 역사를 볼거리, 구경거리로 만들어 놓고 있는데, 우리가 그곳에서 무엇을 얼마나 반성하고 사고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전쟁기념관의 건축양식과 무기 진열방식은 국가주의를 기념비적 방식으로, 그러나 절망적으로 주입하는 일방적인 언어에 의존하고 있다.
  그렇다면 군사박물관에서 우리는 무엇을 볼 수 있을까. 무수한 기억의 증표들을 통해 역사를 재해석하고, 기억을 새롭게 구조화하면서 그 의미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있음을 깨달을 수 있을까. 아니면 국가주의와 영웅주의 이미지에 가려 무수한 이름 없는 삶을 하찮은 것으로 바라보게 하는 것일까. 어쨌든 군사박물관이든 전쟁기념관이든 일정하게 기념비주의적 체계를 갖는 데는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기념비라는 것의 모순과 역설을 발견하게도 만든다는 것이다. 단지 프랑스의 군사박물관이 그 모순과 역설을 간접적으로, 따라서 관람객이 스스로 그것을 찾아가도록 유도해준다면, 우리의 전쟁기념관은 직설적으로, 그리고 단순하고도 과격하게 드러내 준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라는 생각도 해 본다. 실제로 이 공간을 가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공감하리라 본다. 앵발리드의 거대함을 뒤로 하고 나오는 순간 어떤 해방감 같은 것이 느껴지는 것을, 그래서 길거리에 있는 어느 카페에 들어가 차 한 잔과 평범한 일상과 마주할 때 진정한 삶과 역사, 살아 숨쉬는 작은 영웅과 현실을 호흡하게 되는 그런 순간을, 마치 용산 전쟁기념관을 나와 삼각지의 허름한 선술집에서 막걸리를 마주할 때 국가주의와 영웅주의가 얼마나 덧없는지를 느낄 때처럼 말이다.

 

 

박신의
사진 황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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