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리뷰] 감기도 못 고치는 세계에 대한 조롱 - 식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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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도 못 고치는 세계에 대한 조롱 - 식코


글 성지훈/ acesjh@gmail.com 

 

 

의사는 한국 드라마 주인공의 직업으로 가장 인기 있는 직업 중 하나일 것이 분명하다. 그들은 대부분 “의술 보다는 인술”을 실천하라는 격언을 가슴 속 깊이 간직하며, 돈 때문에 치료를 받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가슴 아파 하고, 한 발 나아가서는 그 치료비 마련을 위해 애쓴다. 시골 보건소나 낙도의 공중보건의로 일하거나 ‘국경없는 의사회’같은 NGO에 들어 제 3세계 오지로 의료봉사를 떠나기도 한다. 그런 주인공들의 가장 큰 라이벌은 “병원도 기업이야”, “병원은 흙파서 치료 하냐”란 대사가 어울리는 또 다른 의사 혹은 병원 경영자들이다. 그들은 병원 경영을 위한 확고한 철학을 갖고 있으며 이른바 ‘돈 되는 환자’를 유치하는데 혈안이 돼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드라마가 그렇듯이 그들도 극의 말미에는 대오각성, 가난한 이들에게도 평등하게 의료행위를 실천하는 의사가 된다.

 

드라마에서 ‘가난한 환자도 잘 돌봐주는 의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수익을 올리는데 치중하는 의사’가 결국은 패배하는 라이벌로 등장하는 까닭은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 즉 우리의 인식이 실제로 그렇기 때문이다. “적어도 돈이 없어 사람이 죽는 일만은 없어야 한다”는 믿음. 그러나 동시에 그런 ‘착한 의사’들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또 다른 이유는 이제는 그런 의사를 현실보다는 판타지의 세계에서나 찾아야 할지 모른다는 모종의 불안감도 익히 알기 때문이다.

 

 

# 늬들 어떻게 그러고 사니?

마이클 무어가 만든 <식코>는 미국의 의료보험제도가 얼마나 형편없는 제도인지 그가 보여줄 수 있는 한에서 가장 처절하게 비난하는 영화다. 작업 중 중지와 약지 손가락을 잘린 남자가 병원비 때문에 약지손가락만을 봉합하기로 결정했던 이야기를 시작으로 마이클 무어는 미국의 민간의료보험이 어떻게 환자들을 ‘죽여 왔는지’ 수 십 개의 사례를 나열한다. 마이클 무어를 따르며 미국의 민간의료보험을 살펴보자면 미국은 사람이 살 수 없는 나라다. 그들은 보험신청을 더 잘 거부한 직원과 의사에게 더 높은 연봉을 주고, 아무리 시급한 환자여도 보험회사가 지정한 병원 외에는 치료를 받을 수 없다고 우기다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병원비 지불 능력이 없는 환자는 봉합도 끝나지 않은 환부를 그대로 드러내놓고 병원 밖으로 내쫓거나 보험금이 지급된 환자의 병력을 뒤져 보험금을 기어이 환수해가기도 한다.

 

미국 의료보험제도의 난점을 살피는 마이클 무어의 태도는 차라리 미국인들에 대한 조롱에 가깝다. “늬들 어떻게 이러고들 사냐?”. 그 조롱은 비교적 공공의료체계가 잘 잡혀 있는 나라들과의 비교에서 더욱 도드라진다. 마이클 무어는 미국인들이 조롱하거나 경멸하곤 하는 프랑스와 쿠바, 영국, 캐나다의 의료제도를 보여주며 미국인인 자신이 그들의 의료보장제도에서 얼마나 충격을 받는지를 극적으로 연출한다. 영화의 말미, 미국에서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이들을 쿠바에 데려가 치료를 받게 하는 장면은 미국에 대한 조롱의 정점을 찍는다. 미국에서 200달러나 하는 약을 쿠바에선 단돈 5센트에 구입한 인물은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눈물을 짓는다. (심지어 미국에서 의료보험보장을 받지 못해 쿠바에서 치료를 받은 이들은 미국정부가 ‘영웅’으로 호칭했던 9.11 사건의 구조대원들이다. 그들은 당시 테러범들이 수용돼 있는 관타나모 형무소만큼의 의료혜택도 받지 못하고 있었다)    

 

마이클 무어는 영화에서 “세상은 내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것”이라는 말을 전하고 싶어 한다. “단지 아프면 치료를 받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이웃과 더 잘 지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는 것. 결국 사람으로서 누려야 할 가장 당연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

 

 

# 우리는 의료를 지킬 수 있을까

<식코>가 우리나라에 개봉한 건 2008년이었다. ‘광우병 쇠고기’에 대한 공포에서 시작된 촛불의 시선이 의료를 비롯한 공공부문의 민영화로 점차 넓어지던 바로 그 때. 그리고 5년여가 지난 2013년, 정부는 원격의료법안과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등을 내놓으며 의료민영화 논란에 다시 불을 지피고 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지금 나오는 ‘의료민영화’ 논란은 그리 정확해 보이지 않는다. 우리사회의 의료는 이미 민영화돼 있기 때문이다. 의료 공급은 이미 94%가 민간병원에서 이뤄진다. 대부분의 대형 대학병원은 물론 동네의원들까지 민간이 운영하고 있다. 정부는 이점을 강조하며 의료공공성의 핵심인 건강보험의 민영화 계획이 없으므로 ‘의료민영화’는 없다고 꾸준히 주장한다. 정부의 말마따나 건강보험민영화가 없는 한 의료민영화는 없다면 정말  ‘의료민영화’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질문을 다시 바꿔야 한다. “우리는 의료의 공공성을 지켜갈 수 있을까?”

 

흔히들 한국의 의료보장제도가 미국의 그것보다는 월등하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사실 착각이다. OECD 국가들의 의료체계에서 한국은 미국과 함께 민간형 의료체계를 구축하고 있다고 분류된다. 한국의 건강보험 보장성은 현재 55% 정도다. (OECD 평균은 75%) 적자가 심각하다는 이유로 환자를 내쫓아가며 문을 닫은 진주의료원 같은 공공병원도 전체 병원의 10%에 불과하다.

 

사실상 영리병원을 허용한 정부정책에서 영리병원에 투자한 자본이 병원을 통해 수익창출을 시도하기 시작했을 때 그 부담은 고스란히 환자들에게 돌아간다. 건강보험을 건드리지 않았기 때문에 의료민영화가 아니라던 정부의 말도 한미 FTA 체결로 민간의료보험 시장의 성장과 해외 의료법인의 국내시장 진출이 허용됐음을 떠올리면 마냥 안심할 수는 없는 일이다. <식코>에서 그렇게 잔인하고 치밀했던 미국의 의료보험회사들이 한국시장에 몰려오고 그들이 한국의 영리병원에 투자하며 수익을 거둬간다 해도 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돈이 없어 환자가 죽어나가는 일은 한국에서도 이미 발생하고 있다. 한국의 의료보험 체계에서도 건강보험은 의료원가의 일부만을 보장하지 않기 때문에 병원은 환자가 부담해야 하는 각종 비급여 서비스와 과잉의료를 제공하는 변칙적 방법을 사용한다. 의료라는 전문 분야에 대한 정보력이 극히 취약한 소비자인 환자는 사실상 의사의 판단에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과잉진료와 비급여 서비스 요구를 거부할 수는 없다. 한 번에 수백만 원씩 하는 치료나, 수천만 원의 병원비가 없어서 환자가 죽거나 가산을 탕진하는 에피소드는 이미 한국사회의 클리셰다.

 

# 감기 걸려 사람이 죽어선 안 되는 거잖아요

 

 

법과 제도를 만드는 것은 철학이다. 아니 그보다는 삶의 방식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겠다. 한미 FTA니, 무슨 정책이니, 계획이니 하는 말들 보다는 “충분히 살릴 수 있는 사람을 돈 때문에 죽이지는 말자”는 마음. 고작 이런 마음에 철학이니 윤리니 하는 거창한 말들을 가져다 붙이기는 너무 부끄러운 일이다.

 

‘공공(公共)’이나 ‘복지’라는 말만 나오면 경제수준이나 규모, 효율성이나 합리성 같은 말을 들먹이는 사람들이 있다. 수지가 맞지 않는다며 환자가 누워있는 병원의 문을 닫은 도지사도 있었다. 그런 이들일수록 대부분 ‘국격’이나 ‘선진국’같은 말은 두 손을 들고 환영하기도. 그러나 국격이란 적어도 죽지 않아도 될 사람이 죽는 일이 없는 나라에서 쓸 수 있는 말일테다. <식코>에서 공공의료의 좋은 예로 보여준 영국의 의료보장제도는 1948년에 시작됐다. 전쟁이 끝난 지 고작 3년 후. 온 나라가 폭격의 잔해도 치우지 못했던 그 시절에 영국은 적어도 아픈 사람만은 사회가 함께 치료하자는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따라하고 싶어서 법과 제도를 총체적으로 수입하기로 결정한 ‘선진’ 미국은 ‘적국’ 쿠바보다 영아사망률도 높고 평균수명도 짧다. 무엇이 ‘선진’이고 국격일까.

 

근래에 보기 시작한 어느 드라마에서 흥미로운 장면을 봤다. 힘들게 번 돈을 모두 병원에 기증하는 어느 청년에게 병원원장이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자 그 청년은 “사람이 감기에 걸렸다고 죽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 드라마의 배경은 1930년대였다. 2014년을 살고 있는 지금 우리는 겨우겨우 빠져나온 감기 걸려 사람 죽는 세계로 다시 돌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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