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리뷰] 가장 위험한 에너지의 환상 - <영원한 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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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위험한 에너지의 환상 - <영원한 봉인>


글 성지훈/ acesjh@gmail.com 

 

 

 

지난 추석 즈음, 명절 차례상을 주제로 수다를 떨다 이야기가 엉뚱한 방향으로 튀었다. ‘동태전’ 때문이었다. 친구는 후쿠시마에서 원전사고가 발생한 이후 동해안 일대에서 잡히는 생선을 먹지 않는다고 했다. 명태는 생산량의 90%이상이 일본 근해에서 잡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서 유통되는 명태에서 다량의 세슘이 검출되기도 했다. 실제로 명태 소비량은 종전에 비해 반 토막 수준으로 떨어졌다.  

 

미래세계의 디스토피아를 묘사한 영화들을 보자면 인류는 대부분 핵전쟁 때문에 위기를 맞는다. 핵폭탄이 터지고, 온갖 곳으로 번져나간 방사능에 제 모습을 갖추고 살아남은 생물도 얼마 존재하지 않는. 암울하고 어두운 미래에 대한 상상. 어쩌면 현 시점의 인류가 상정할 수 있는 가장 큰 공포는 아마도 ‘핵’이다.

 

그리고 공포는 현실로 다가왔다. 히로시마, 체르노빌, 쓰리마일, 최근의 후쿠시마까지. 방사능 사고는 숱했다. 핵발전 혹은 핵전쟁의 공포는 영화 속 이야기거나 괴담이 아닌 현실이 됐다. 아직도 생명 있는 것이라곤 접근도 않는 체르노빌은 물론이고, 후쿠시마 인근 어린이들의 암 발병 비율이 비약적으로 높아졌다는 보고도 있다.  

 

# 위험하기 그지없는

 

핵발전은 세계 발전 총량의 14%를 차지하고 있다. 100기가 넘는 원전을 보유한 미국이나 일본, 특히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원전 비중은 더욱 확대되고 있다. 대한민국도 총 23기의 원전을 가동 중이고 발전 총량의 31%가량을 원전에 의지하고 있다. 최근 납품비리나 노후 원전의 무리한 가동 등 끊임없이 잡음이 발생하지만 한국정부는 신규원전을 건설하며 원전비중을 더욱 높여나간다는 계획이다.

 

석유나 석탄 등 화석연료가 고갈되어 감에 따라 원자력은 대체 에너지로 추앙받았다. 원전은 높은 기술력의 방증으로 여겨졌고, (잘만 관리하면) 원자력 발전은 ‘청정’하고 ‘안전’한 것으로 포장됐다. 그러나 원전은 정말 잘 관리하기만 하면 안전하고 청정한 것일까. 아니, 잘 관리할 수나 있는 것일까. 미카엘 마센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원한 봉인>(Into Eternity)은 원전의 위험성에서 우리는 결코 안전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영원한 봉인>은 핀란드의 방사능 폐기물 보관소 ‘온카로’ 건설과정을 추적하며 방사능 폐기물의 위험, 나아가 원자력 발전 자체의 위험에 대해 질문한다. 핀란드 정부는 미래세대의 안전성을 위해 방사능 폐기물 저장소 ‘온카로’ 건설을 추진한다. 안정적인 지층의 지하에 도시규모의 거대한 저장소를 만들어 폐기물을 가득 채운 후 그곳을 봉인하겠다는 계획이다. 핀란드어로 ‘은폐’라는 의미를 가진 ‘온카로’는 방사성 물질이 무해한 수준으로 사라지는 10만년 동안 폐기물을 봉인한다.

 

감독은 ‘온카로’가 얼마나 철저한 방식으로 치밀하게 건설되는지 지켜본다. 온카로를 만들고 있는 이들은 지상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도 (전쟁이나 기후변화, 지진, 심지어 빙하기에도!) 지하의 ‘온카로’만은 안전할 것이라 전망한다. 정말 ‘온카로’는 고심과 심혈을 기울여 철저하게 안전한 상태로 만들어지고 유지되는 것처럼 보인다. 핀란드 정부는 10만년 후의 미래 세대들을 위해 법을 개정하고 과학 지식을 총동원하며 그들의 안전을 지켜주려고 애쓴다. 그러나 ‘온카로’가 공고하고 치밀해 보일수록 드는 감정은 안도나 안정이 아니라 오히려 더 큰 불안이다. “방사능 물질이란 저렇게까지 만전을 기해야 할 만큼 무서운 것”이라는 인식.

 

더구나 온카로의 안전성을 자부하던 이들도 “그럼에도 미래에 무슨 일이 발생할 지는 장담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10만 년 후의 미래를 예측하고 장담하는 것이 얼마나 허망하고 오만한 일인지를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말처럼 ‘온카로’가 아무리 철저하게 봉인된다 하더라도 10만년이라는 세월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긴 시간이다. 그러고 보면 10만 년 전의 지구엔 현생 인류가 아니라 ‘네안데르탈인’이 살고 있었다. 

 

‘온카로’가 수 백 미터 지하에 거대도시 규모의 동굴을 만들었지만 그 곳에는 고작 핀란드에서 만들어진 폐기물만을 저장 할 수 있다. 핀란드는 한국을 제외하면 세계에서 18번째로 많은 원전을 보유했을 뿐이다. (‘뿐’이라는 말이 조금 우습지만 104기의 원전을 보유한 미국이나 세계에서 5번째로 많은 23기의 원전을 보유한 한국에 비하면 ‘뿐’이란 말이 나오게 적은 것은 사실이다.) 세계에는 최소한 25만 톤 이상의 고준위 핵폐기물이 있고 이 폐기물들은 ‘온카로’보다 훨씬 안전하지 못한 상태로 보관되고 있다. 10만년의 세월을 보장하면서. 세계 어디에도 아직 고준위 폐기물을 최종보관 할 수 있는 저장소는 없다.  인류는 10만년의 세월을 담보할 수 있는 기술력에 도달하지 못했다.

 

한국도 경주에 저준위 폐기물 방폐장을 건설 중이다. 그러나 가장 안전한 지층과 지반을 고르고 골라 건설 중인 ‘온카로’에 비해 경주의 방폐장 부지는 곡괭이로도 쉽사리 파지는 최하등급 암반인데다 콘크리트를 바르고 방수작업을 완료한 후에도 지하수가 유입되고 있다.

 

 

 

 

# 핵발전은 정말 대안 에너지일까

 

체르노빌 사고의 몇 배에 달한다는 방사능이 유출된 후쿠시마 사고 이후 (한국을 포함 몇몇 국가를 제외한) 세계는 원전을 폐기하고 대체 에너지를 찾기 위한 노력에 들어갔다. 독일의 경우 2022년까지 모든 원전을 폐기하겠다 발표했고, 원자력 발전 의존도가 40%에 이르는 스위스도 2019년부터 2034년까지 보유 중인 원자로 5기를 단계적으로 폐쇄하겠다고 밝혔다. 이탈리아와 벨기에도 원전을 폐기하거나 신규원전 건설을 중단하는 논의를 진행 중에 있다.

 

보다 안전한 미래를 대비하는 일. 그러나 그건 동시에 오늘의 인류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 전쟁과 재난, 사고에서 핵발전은 결코 안전할 수 없다. ‘온카로’ 건설에 참여한 과학자들의 말처럼 “변화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며 “핵발전은 근본적으로 불확실성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내일이라도 후쿠시마나 체르노빌 같은 참사가 발생하지 말란 법은 없다. 실제로 한국의 노후 원전들에선 한 해에 몇 차례나 가동중지와 고장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던가.

 

또한 핵발전은 화석연료의 고갈을 대비하는 대체 에너지원으로서의 매력도 없다. 핵발전의 원료가 되는 우라늄 역시 고갈 위기에 처했다. 우라늄 재고는 불과 몇 십 년이면 바닥이 난다. 이미 고품질의 우라늄 저장량은 동이 났다. 같은 양의 우라늄을 얻기 위해 점점 더 많은 바위를 옮겨야 하고 이와 함께 비용이 상승하고 생태계엔 피해가 늘어난다. 현재 알려진 우라늄 저장량을 모두 채굴하면 현존하는 약 440기의 원전을 45년에서 80년 간 가동할 수 있다. 그러나 더 많은 원전이 만들어지면 우라늄은 더 짧은 시일 내에 완전히 소진될 것이다.

 

핵폐기물을 안전하게 보관하는 것에 온 정신을 쏟고 있는 ‘온카로’의 과학자들 역시 “핵발전이 인류의 대안 에너지가 될 수 없다”고 자인한다. 결국 인류가 더 오래도록 안전하고 평화롭게 살 수 있는 방법은 대체 에너지를 찾는 것이다. 그리고 이미 우리에겐 태양과 바람과 물같은 유용하고 강력한 에너지원이 주어져 있다.

 

 

 

# 봉인하거나, 봉인되거나

 

<영원한 봉인>에서 들었던 가장 충격적인 말은 “중국이나 인도 등 아시아 개발도상국들이 구미의 국가들과 비슷한 수준의 생활을 하기 위해선 앞으로 수년간 매일 3기의 원전을 더 건설해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충격은 ‘아시아의 개도국들이 얼마나 궁핍하게 살고 있는가’가 아니라, ‘선진국이라 불리는 국가들이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며 살고 있는가’하는 점이다. 

 

경제발전과 물질문명. 인류는 진보하고 편안해졌다고 여겨왔지만 어쩌면 오히려 제 살을 깎아먹으며 퇴보하고 불행해지고 있었는지 모른다. 사실 우리가 지금 말하는 경제란 고작 지난 2~300년간 화석연료, 핵에너지에 기반을 둔 욕망 추구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온 개념체계 이외에 아무것도 아닐지 모른다. 그동안 인류는 더욱 욕망하고 그만큼 생산, 소비하며 다시 또 욕망하는 기계로만 존재했다. 재생 불가능한 자원과 에너지에 의존하여 무한한 경제성장이 가능할 것이라고 믿는 것은 참으로 어이없는 착각이다.

 

몇 년 전, 태안 앞바다에 수 천 톤의 기름이 쏟아졌을 때, 사람들은 선한마음으로 기름때를 닦으러 달려갔지만, 도대체 이 많은 기름이 어디에 쓰이는지, 정말로 이 많은 기름이 필요한지 질문한 이는 많지 않았다. 지금의 경제체제, 욕망하고 소비하는 것만이 오직 미덕인 세상에선 어쩌면 당연했던 일이다. 하지만.

 

이미 인류는 기로에 서있다. 비단 핵에너지 이야기만은 아니다. 핵에너지만이 대안이라고 주장하는 몇몇의 기업과 정부들, 자연에 순응하고 공존하는 겸손함이 아니라 정복하고 착취하는 대상으로 인식하도록 강변하는 사람들, 죽음이 바로 눈앞에 도사리고 있음에도 외면하고 달려가게 만드는 치킨게임. 이건 10만년 후의 미래가 아니라 당장 내일 우리 생존의 문제다.  

 

“시급한 것은 경제성장, 생산력 증대, 대량생산/대량소비를 통한 ‘발전’ 혹은 ‘진보’의 추구라는 낡은 공식을 과감하게 버리고, 우리의 생활방식을 자연의 본성과 리듬에 순응하는 순환적인 패턴으로 전환하는 일이다. 요컨대 산업자본주의 이전, 인류의 오랜 생활방식이었던 순환경제 시스템의 복구와 재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 <좋은 사회는 어떻게 가능할까> 中


‘온카로’의 과학자들은 ‘온카로’의 목적은 “이전의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10만년을 꽁꽁 숨겨놓아야 하는 위험 물질을 만들지 않아도 되는 시절. 눈밭에서 순록이 자유롭게 거닐 수 있었던 시절로. 

 

하여 ‘온카로’는 단지 핵폐기물을 봉인하기 위한 장소로 보이지만은 않는다. 그 곳은 과한 욕심을 내며 제 살을 깎아먹던 인류의 ‘반성문’이면서 동시에 보다 겸손하고 보다 지혜로운 삶을 살아갈 인류의 ‘생활계획표’ 같은 곳이어야 한다.

 

제대로 된 반성과 계획을 해내지 못한다면 ‘온카로’에 봉인되는 폐기물은 방사능 물질이 아니라 지금 이 곳을 살고 있는 우리일 수 있다. 

 

 

   
  
9회 EBS 국제다큐영화제(2012) 
16회 인천인권영화제(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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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회 서울환경영화제(2011) 
23회 암스테르담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2010) 
2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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