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리뷰] 단언컨대, 기적은 종로에서 시작됐습니다. - 리얼리티 게이다큐 <종로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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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언컨대, 기적은 종로에서 시작됐습니다.

리얼리티 게이다큐 <종로의 기적>

 

 글 성지훈/ acesjh@gmail.com 


지난 9월 7일, 아직 가시지 않은 더위에 줄줄 흐르는 땀을 식히려 청계천 모퉁이 나무 그늘에 앉았다. 주말 오후의 청계천은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는 커플들이 가득했다. 더워 죽겠는데 굳이 손을 꼭 잡고 붙어 앉은 그들에게 속으로는 저주를, 눈으로는 질시와 부러움을 쏘아내고 있을 때 눈에 띈 한 커플, 서로의 땀을 닦아주고 부채질을 해주면서도 간간히 입을 맞추고 떨어져 앉을 줄 모르던, 어느 레즈비언 커플이었다.

 

 

그 날은 <소년, 소년을 만나다>, <친구사이>등을 연출한 영화감독이자 제작자인 김조광수 청년필름 대표와 김승환 레인보우팩토리 대표가 국내에선 처음으로 동성 결혼식을 올리는 날이었다. 종로와 청계천 일대엔 레인보우 깃발과 그들의 결혼을 축하하는 플랜카드가 즐비했다. 동성애자들과 인권운동 활동가를 비롯해 천여 명의 사람들이 종로와 청계천 일대를 메웠다. 바야흐로 동성결혼 시대의 개막.

 

행정당국이 이 세기의 커플(!)의 혼인신고를 받아줄 지 여부나, 이들의 결혼식에 그야말로 똥물을 뿌린 일부 몰지각한 이들(!!)의 곱지 않은 시선은 차치하고 이들의 결혼이 한국 사회의 이성애 중심주의, 전근대적 가족주의에 작지 않은 균열을 낸 것만은 어김없는 사실이다. 담배연기 자욱하고 으슥한 게이바(Bar), 가장 가까운 친지들에게도 정체를 숨겨야 하는 눈물, 세상으로부터의 소외. 이런 상징들이 그동안의 동성애자들을 지칭하는 것이었다면, 밝은 대낮에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축하 속에 열린 이 결혼식은 그야말로 ‘기적’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이 ‘기적’의 시작은 어쩌면 ‘종로’에서부터.

 

 

# 종로의 기적

종로는 이태원과 함께 서울의 게이 커뮤니티를 양분하고 있다. 지금도 종로에는 백 개가 넘는 게이바가 밀집해 있고 젊고 어린 ‘꽃띠’들 뿐 아니라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 게이들도 아직 녹슬지 않은 ‘게이다’를 발동시키고 있다. ‘P살롱’으로 불리던 파고다 극장과 극장에서 만난 커플들이 슬그머니 모여들던 종로 인근의 다방들은 게이들의 욕망과 낭만, 실연과 희망이 반복되던 곳이다. (지금도 끊임없이 게이설이 나도는 어느 시인은 파고다 극장에서 지퍼가 열린 채 복상사했다는 풍문이 돌기도 했다)

그러나 종로가 게이들의 ‘낙원’인 것만은 아니다. 종로의 뒷골목에선 동성애자를 겨냥한 증오범죄가 종종 일어난다. 게이 커플을 향해 갑자기 달려들어 집단린치를 가하는. 종로는 아니지만 지난 해에는 남산 일대에서도 비슷한 증오범죄가 발생했었고, 마포구청이 LGBT라는 표현이 들어갔다는 이유로 현수막 게시를 불허하고 철거를 진행한 ‘사건’도 같은 범주에서 호모포비아(동성애 공포증, 내지는 혐오증)에 해당하는 일이다. 김조광수, 김승환 커플의 결혼식에서도 불청객이 난입해 오물을 투척하고 관계자를 폭행하는 일이 발생했다. 교회장로라고 자신의 신분을 밝힌 이 남자는 “인분과 된장을 섞은 것이 바로 동성애의 현실”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종로에서 한 블럭만 벗어나도 게이들이 받는 시선은 여전하다. 어느 유명 연예인은 동성애를 ‘나쁜교육’으로, 동성애자를 ‘불쌍한 영혼’으로 표현했다.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는 극 중에 동성애자가 등장한 이유로 수많은 비난 여론을 감수해야 했다. 여전한 호모포비아의 세상. 동성간의 사랑이 멸시와 증오의 대상이 아니라 축복과 질투(!)의 대상이 되는 일, 결혼을 당연하게 하는 일은 종로 밖의 세상에선 여전히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 가장 리얼한 게이이야기

이혁상 감독과 ‘연분홍치마’가 <종로의 기적>을 내놓기 전에도 LGBT 영화들은 있었다. 그러나 ‘맨얼굴’의 게이들이 자신의 ‘생활’을 노출시킨 작품은 <종로의 기적>이 처음이다. 그동안의 것들은 동성애자나 트랜스젠더를 소재로 취급하거나 영화의 주변부로 소비하는데 그치기 일쑤였다.

 

<종로의 기적>의 가장 큰 미덕도 이 지점에 있다. 이혁상 감독은 그동안 정체를 숨기고 살아야했던 혹은 남들과의 다름에서 상처를 받은 이들의 고생담에 눈길을 주지 않는다. 그로인해 ‘인간극장’류의 다큐멘터리가 타자의 고통을 전시하면서 대상을 착취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는다. 사실 흥미로운 다큐멘터리를 완성하는 가장 손쉬우면서 안이한 길을 따르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미덕은 <종로의 기적>에 보편성과 특수성을 동시에 부여한다.

 

관객들은 자신들과는 사뭇 다른 양식의 삶의 모습에서 (여기서의 ‘다름’은 성정체성의 다름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해 세상에 자신을 설득시키는, 이성애자들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삶의 노력을 의미한다.) 느끼는 괴리감에 감동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등장인물들의 삶이 여상스럽고 보편적일수록 그 농도를 더해간다.

 

그건 어떤 의미에서 ‘리얼리티’다. 간혹 관객일반은 피가 튀고 살점이 뜯어지는 장면을 ‘리얼하다’고 표현한다. 또는 극한의 상황까지 내몰린 캐릭터의 불쌍하기 그지없는 모습에 값싼 동정의 말과 함께 ‘리얼’이라는 수사를 덧붙인다. 그러나 그건 어쩌면 판타지에 불과할 따름이다. (‘진짜 삶’에서 머리가 뜯겨나가고 팔목이 잘려나가는 상황이 얼마나 있을까.) 오히려 ‘리얼리티’는 현실의 고단함을 그대로 드러내는데 있다. 그리고 모두 그 강퍅하고 고단한 삶에서 자신의 희망을 발견하고 우직하게 기적을 꿈꾸며 살아가는 것.

(<종로의 기적>은 게이에 대한 판타지를 깨는데도 적잖이 일조한다. 많은 미드에서 게이는 잘생기고 돈도 많은데 이해심까지 갖춘 완벽한 남자로 그려진다. 심지어 주인공의 믿을 수 있는 절친. 그러나 <종로의 기적>의 게이들은 배나오고, 술 마시고, 가난하고, 소심하며 가끔 찌질하다. 대부분의 한국남자들이 그런 것처럼)

 

# 다큐멘터리가 삶을 변화시키는 순간

대부분의 다큐멘터리는 관찰자의 위치를 고수하며 대상과의 거리유지를 통해 객관성을 확보하려 한다. 그러나 엄밀히 얘기하면 모든 대상은 카메라를 거치는 순간부터 객관적일 수 없다. 그보다 이미 카메라에 담길 대상으로 선정되면서, 어쩌면 세상에 객관적이고 실체적인 사실 혹은 진실이라는 게 있기나 할까. 그래서 다큐멘터리의 본질이니 다이렉트 시네마니 하는 다소 뜬구름 잡는 소리보단 창작자의 의중이 명확히 포착되는 다큐멘터리에 눈이 가는 건 당연한 순리다. <종로의 기적>에서도 감독은 카메라 안의 풍경에 끊임없이 개입한다.

 

이혁상 감독도 “다큐멘터리의 환상과 신화에 얽매이지 않고 감독과 주인공들의 관계가 영화에좀 더 드러남으로 이성애 중심사회를 향한 성소수자들의 메시지에 더욱 힘을 실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영화의 촬영 전과 후 등장인물들은 물론 감독의 삶도 확연히 달라진다.

 

이혁상 감독은 <종로의 기적>을 통해 커밍아웃했다. 처음에는 카메라 뒤에 숨어 대상들을 관찰하는 것으로 역할을 규정했던 감독이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선언하는 순간, 스크린과 렌즈로 가로막혀 있던 벽은 허물어진다. 그리고 관객들은 관찰자가 아니라 ‘종로’ 한복판으로 스며들게 된다. 스스로 ‘영화감독’보다는 ‘활동가’라는 이름이 더 편하다는 감독의 말과도, 다큐는 결국 동화(同化)를 위한 작업일지 모른다는 의문과도 맞닿는 순간.

 

(감독은 <종로의 기적>을 통해 가장 극명하게 변화한 부분으로 HIV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꼽는다. HIV 인권운동을 하는 욜과 석주의 관계에서 HIV 문제가 남의 일이 아니라 자신과 자신의 친구들의 일이라는 것을 인지했다고. 애초의 욜의 에피소드는 대기업에 다니는 게이가 겪어야 하는 일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은 결국 HIV문제에 대한 시선으로 마무리된다.)

 

 

# 하지만 단언컨대, 기적은 시작됐다

일부러 냉정히 말하면, <종로의 기적>은 흥행에 실패했다. 2006년 개봉한 이송희일 감독의 퀴어영화 <후회하지 않아>가 4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고, ‘연분홍치마’가 제작한 <두 개의 문>이 7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점을 감안하면 1만 명도 채 동원하지 못한 <종로의 기적>의 스코어는 다소 초라해 보인다. (그러나 독립영화, 그것도 다큐멘터리의 스코어로는 결코 나쁜 성적이 아니다)

 

호모포비아는 여전하다. 결혼식장에서 똥물을 맞은 김조광수 대표는 “그래도 우리는 행복하다”고 말했지만 그들의 행복과는 별개로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서 함께 사는 당연한 일이 정말로 당연해지기까지 여전히 요원해 보인다. 어쩌면 그건 정말 기적같은 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단언컨대’ 기적은 시작됐다. 꽃미남도 아니고 배도 나왔고, 소심하고 가끔은 찌질한 이 보통 남자들이 종로에서 일으킨 기적이 점점 세상을 전염시키길 기대한다. 그래서 사실 행복한 커플에게는 오직 질투와 절망의 저주만 퍼붓고 싶은 내 바람이 이뤄졌으면 좋겠다.

 

결혼식 날, 주위를 점령한 커플들에게 혹시 망나니 호모포비아로 보일까 염려하며 선량한 눈빛을 가장해 축하의 말만 전하느라 내심 무척 힘겨웠다.

 

# 덧붙여, 연분홍치마

<종로의 기적>은 물론 <두 개의 문>같은 의미있는 활동을 계속하는 ‘연분홍치마’의 이름을 꼭 언급하고 싶다.

<종로의 기적>을 제작한 ‘연분홍치마’는 ‘성적 소수문화환경을 위한 모임’이다. 연분홍치마는 1년에 한 번 꼴로 성적 소수문화를 위한 다큐멘터리를 제작, 발표한다. 그동안 <3 X FTM>, <레즈비언 정치도전기> 등의 작품을 선보였다. 지난해에는 용산참사를 다룬 <두 개의 문>을 발표해 기록적인 관객동원과 동시에 올 해의 독립영화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연분홍치마’는 최근 제작한 <노라노>를 마치고 활동 1기를 정리하고 새로운 활동을 준비한다고 한다. 의미있는 주제를 가장 탁월하게 표현하는 ‘연분홍치마’가 앞으로도 지속해 성적 소수문화환경에 기여하는 재밌고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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