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리뷰] 우리가 아버지를 용서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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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버지를 용서할 수 있을까

글 성지훈/ acesjh@gmail.com 

 


아버지는 늘 ‘폭군’이었다. 사소하게는 TV 앞 리모컨 점유율이나 저녁식탁의 고기반찬 선점권부터 조금 더 심각하게는 어머니를 향한 폭력이나 무책임한 가정경제 파탄의 주범으로. 매일 술을 마시던 아버지, 그 술상을 뒤엎던 아버지, 어머니를 때리던 아버지, 결코 나를 이해하지 못하던 아버지.

 

그 아버지의 이미지는 가부장, 남근주의 같은 말들로 규정됐다. 그렇게 아직 젊은 날을 살아가는 이들은 대부분 아버지에 대한 일말의 증오심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의 토대가 됐다.

아버지는, 적어도 이 시대 한국사회의 아버지는 정말로 그랬다. 다만, 그렇지만, 그럼에도 그들에게도.

 

# 그녀의 아버지

홍재희 감독은 그녀의 아버지 홍성섭 씨로부터 43통의 이메일을 받는다. 그가 숨을 거두기 전 1년간 보낸 편지들. 거기엔 1935년부터 이어진 70여 년간의 삶이 적혀있었다.

 

아버지는 ‘빨갱이들의 나라’가 지겨워 한국전쟁 직전 어린 나이에 홀로 월남에 성공한다. 배움에 대한, 성공에 대한 열망이었다. 원대한 꿈과 영민함으로 사업에 성공을 목전에 두고 그는 한국전쟁을 맞이한다. “지긋지긋하던 인민군을 피해왔더니 다시 인민군 천지가 돼버린 것”이다.

 

이 전쟁과 가난, 이 지긋지긋한 땅에 뿌리내리지 못한 아버지는 바다 건너의 땅에서 꿈을 찾았다. 월남전이 벌어진 베트남, 건설경기 붐이 불던 중동, 독일, 호주, 그리고 미국. 언제나 떠나고 싶어 했던 아버지에게 한국은, 그리고 한국의 가족은 거추장스런 짐이었다. 그리고 그 꿈이 좌절된 아버지에게 한국과 가족은 철저한 원망의 대상이었다.

 

아버지는 좌절된 꿈이 남긴 상처를 가족에 대한 폭력으로 메우려 했다. 매일같이 술을 마시고 어머니를 가끔은 딸을 때렸다. 경제적으로 무능했으며 무책임했다. 가정경제는 전적으로 어머니의 몫이었으며 똑똑한 두 딸은 대학에 가자마자 집에서 ‘탈출’했다. 결혼해 미국으로 떠난 큰 딸과 아버지가 그렇게나 싫어하던 운동권이 된 둘째 딸의 삶의 원동력은 어떤 부분에선 아버지에 대한 증오였다.

 

# 우리들의 아버지

그러나 영화가 조금씩 더 아버지의 지난 삶을 추적해 갈수록, 어머니 집안의 내력이 밝혀지면서, 차라리 너무 비극이어서 이제는 희극적이기까지 한 이 나라의 현대사가 이들의 가족사로 침투하면서부터 아버지에 대한 증오심(감독 그녀뿐 아니라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은 그 방향성을 잃어간다.

 

어머니의 작은 오빠는 한국전쟁 직후에 행방불명 됐다. 그 작은 오빠를 찾으러 간 형제도 마찬가지로 행방불명됐다. 당시의 정부는 행방불명을 월북으로 의심했다. 서슬 퍼런 연좌제의 대상이 된 것이다. 설상가상 어머니 집안의 오빠들은 전쟁 당시 보도연맹에 가입한 전력도 보유하고 있었다.

 

결국 아버지의 꿈을 좌절시킨 것은 그 연좌제였다. 높은 성적으로 해외파견 업무 시험을 통과해도 연좌제에 묶여 실패하거나 금세 국내로 소환돼야 했다. 술에 취한 아버지가 술상을 뒤엎으며 뇌까리던 “빨갱이 처갓집 때문에 인생을 망쳤다.”는 외침은 사실이었던 거다.

 

지겹고 미웠던 인민군을 피해 넘었던 38선이었지만 전쟁은 다시 아버지의 꿈을 앗아갔고, 그 전쟁과 대립이 남긴 연좌제는 다시 아버지의 남은 모든 희망마저 빼앗았다. 아버지는 그렇게 무엇 하나 딱히 잘못한 것도 없이 좌절해야했다. 남은 것은 짧은 해외 파견동안 마련한 작은 집 한 채. 아버지는 그 집 한 채만을 부여잡은 채 집안으로 침잠했다.

모든 것을 잃은 남자에겐, 심지어 딱히 잘못한 것도 없이 모든 것을 잃어야 했던 남자에겐 ‘전가’의 대상이 필요하다. “너 때문이야”

 

아버지에게는 “빨갱이 처갓집”이 원망의 대상이었다. 북에 남겨둔 가족들이 있으니 북을 대하는 태도가 남다를 법도 하건만, 아버지에게 북한은 그저 ‘빨갱이들의 나라’였다. 어쩌면 아버지에게 ‘빨갱이’의 의미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자신의 꿈을 부숴버린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 어쩌면 우리의 아버지가 떠올랐다. 내 아버지는 술에 취하면 늘 나를 앉혀놓고 무너진 당신의 꿈을 토로했다. 문인이 되고 싶었던 아버지는 ‘설국’이나 ‘에덴의 동쪽’같은 소설 이야기를 했다. 물론 이야기의 결론은 가난한 집의 장남, 가난한 집의 맏사위로서 꿈을 접어야 했던 기구한 팔자와 그렇게 포기하기엔 아까웠던 자신의 문재에 대한 자랑이었다.

 

우리의 아버지들은 (사실 아버지뿐일까, 꽤 유명한 만화가의 유망한 문하생이었던 어머니는 부지깽이를 들고 달려온 외할머니의 손에 붙잡혀 집으로 돌아가야 했었다.) 대부분 그렇게 누구의 잘못도 아닌 이유로 좌절해야했고 포기해야했고, 또 체념해야했다. 그리고 적당히 누군가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어느 곳에 그 원망을 게워내고. 그리고 그 한과 원망으로 얼룩진 폭력은 대물림되고.

 

‘그건 오로지 이 지겹고 고단한 한국의 현대사 탓이었다.’고 말한다면 이건 또 얼마나 무책임해 보이겠냐만. 사실이 그렇다. 그들은 그렇게 누구의 탓도 아닌 채 좌절하고 포기했다.

 

<감독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다시 웃음을 찾은 순간은 아버지가 그토록 바라마지 않던 ‘미국’을 찾았을 때다. 결혼한 큰 딸을 만나러 향한 미국. 평생을 방안에서 술만 마시던 아버지는 정원을 손질하고 손자를 안고 산책을 나섰다. 집안 곳곳을 청소했고 어머니와는 평생의 처음으로 다정하게 외출했다. 아버지를 짓누르고 있었던 건 분명 대한민국이었을 것이란 느낌이 드는 순간들이었다.>

 


# 그리고 그녀와 우리의 아버지들

영화는 내내 질문한다. “우리가 아버지를 용서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우리가 아버지를 용서할 수 있을 만큼 이해할 수 있겠냐는 질문이면서 동시에 우리에게 아버지를 용서할 자격이 있겠냐는 질문이다. 감독은 카메라 너머에서 ‘홍성섭 가족’을 기록하는 홍재희 감독이면서 동시에 ‘홍성섭의 차녀 홍재희’로 그 프레임 안에 꿋꿋하게 서 있다.

 

그 과정은 감독 홍재희가 파헤친 가족과 아버지, 어머니의 알지 못했던 과거를 홍성섭의 차녀 홍재희가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일련의 과정들은 또 우리의 아버지와 가족들을 우리가 받아들이는 과정이기도 하다.

 

아버지 홍성섭 씨는 죽기 직전까지 오래도록 살아온 집의 재개발 투쟁에 참여한다. 평생을 두고 그렇게나 혐오하던 ‘빨갱이 짓’에 가담하는 것. 어쩌면 아버지는 그 투쟁에 참여하면서 자신이 그토록 증오해왔던 ‘빨갱이’의 실체가 무엇인지 다시금 떠올려본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빨갱이 둘째 딸’에게 남기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문득 우리의 아버지들과 (사실은 내 아버지와) 함께 이 영화를 다시보고 싶어졌다. 여전히 세상에 대한 증오와 체념을 동시에 간직하고 자신에게 또 자신의 가족들에게 모종의 폭력을 가하고 있는 우리의 아버지들과. 그리고 묻고 싶어진다.

 

“아버지, 제가 당신을 용서할 수 있을까요.”

 

# 사적 다큐멘터리의 미덕

감독의 아주 사적인 다큐멘터리였던 <아버지의 이메일>은 사적 다큐멘터리가 가져야 할 두 가지의 미덕을 모두 지닌다. 하나는 홍성섭의 차녀 홍재희가 그녀의 가족들에게 건네는 위로의 편지, 그리고 또 하나는 이 시대의 보편적인 아버지를 가진 우리들에게 보낸 교환일기장 같은 것이다.

 

“결국 우리의 아버지 때문에 우리는 이만큼이나 아팠어. 하지만 우리는 아버지를 용서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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