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리뷰] 해방 이후 가장 폼나는 언니들 이야기 - 왕자가 된 소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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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가장 폼나는 언니들 이야기 - 왕자가 된 소녀들

 

글 성지훈(전 참세상 기자) / acesjh@gmail.com

 

 

 

 

작년 이맘쯤 90년대의 향수를 자극하던 어느 드라마의 인기는 그 시절, 우리가 그토록 열광했던 ‘오빠들’의 기억을 소환했다. 이른바 팬질, 그러니까 일명 ‘빠순이’로 불리던 소녀들의 오빠를 향한 불타는 애정에 그녀들의 부모는 속을 끓여야 했다. 오빠들 집 앞에서 며칠이고 노숙하는 일은 기본이요, 오빠들의 공연을 보기위해 학교를 탈출하려는 시도가 이어지자 교육부가 일선 학교에 조퇴금지령을 내리는 웃지 못 할 해프닝도 있었다.

그러나 사실 ‘요즘 것들’을 타박하던 그 부모들에게도 조용필 오빠나 나훈아 오빠를 쫓아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조용필을 잘 모르는 외국인들은 조용필이 “기도하는~”하며 노래를 시작하면 절로 따르는 소녀들의 비명소리가 애초부터 노래의 일부분인줄 알았다는 후일담도 있다. 용필 오빠를 따라다니던 소녀들의 부모들도 마찬가지로 속깨나 썩었을 테다.

그러나 그녀들도 실은.
    
# “팬레터는 전부 혈서야”

한국전쟁 직후 50년대, 여성국극은 절정의 인기를 누렸다. 꽃 같은 외모의 도령이나 왕자는 물론, 텁석부리 장한이나 근엄한 왕까지 모든 배역을 여성들이 맡아 연기했던 여성국극의 인기는 그야말로 폭발적이었다.

배우들에게 온갖 음식을 해 나르는 일은 기본이었고, 어느 누구는 국극 단체를 만들어 운영하겠다며 2억이 넘는 돈을 바람처럼 날려버렸다고도 한다. 배우들의 옆에 꼭 붙어 온갖 잔심부름과 수발을 해주는 팬들도 있었다. 특히 임춘앵이나 조금앵 같은 배우들의 인기는 엄청났는데, 팬들의 부탁으로 남장을 하고 가상 결혼사진을 찍어주기도 했다. 국극배우 조금앵 선생은 당시의 인기를 회상하며 “팬레터는 전부 혈서였다.”고 말하니 그 열광의 수준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자유로운 연애는커녕 여성들의 문 밖 출입조차 쉽사리 허락하지 않았던 전통적 유교사회는 해방과 전쟁을 지나며 빠른 속도로 자유주의 풍조를 유입했다.(정비석의 ‘자유부인’같은 소설이 연재되고 논란을 일으켰다는 사실이 당시의 시대상을 가장 잘 설명하는 일이라 할 수 있겠다.) 전통적 여성상과 서구의 자유로운 여성상이 교차하던 시절, 여성들만이 무대에 올라 남성을 연기한다는 것은 그 사실만으로도 기존관념의 전복이었다. 거기다 위풍당당한 목소리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배우들의 자태가 그토록 멋졌음에야. 새로운 시대, 보다 나은 삶을 꿈꾸던 소녀들이 당당히 집을 나와 여성들만의 공동체를 만들어내고, 당당히 사람들의 열광을 얻어낸 국극 배우들에게 매료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 “여자기 때문에”

 

절정이던 국극의 인기가 시들해진 것은 60년대 군사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다. 아이러니하게 ‘전통문화 보존사업’이 시작되며 국극의 인기는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판소리나 창극 같은 공연예술들이 ‘무형문화재’라는 이름을 얻으며 정부의 보호를 받기 시작했으나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던 국극만은 제외됐다.

심지어 국극은 “문화예술계에 씻을 수 없는 죄과를 지었다.”거나 “여성만으로 이루어진 기괴한 창극”이라는 비난을 받아야했다. 국극이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당시 국극 무대의 연출과 안무를 맡았던 이들은 점차 국극 무대에 발길을 끊었고 나중에는 자신이 국극을 만들었었다는 사실도 숨기곤 했다. 배우들은 요정에서 벌어지는 ‘기생파티’에서 노래를 부르며 생계를 유지하거나 하나 둘 무대를 떠나야했다. 국극 최고의 스타였던 임춘앵도 쓸쓸한 말년을 보내다 1975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어느덧 고희를 훌쩍 넘긴 국극배우들의 자조처럼 “여자기 때문에”받아야 했던 수모였다. 당시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던 국극이 ‘사이비예술’로 치부되며 전통문화 보존사업에서 제외된 것도, 배우들이 결혼이나 임신, 출산의 과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도 국극이 “여자들의 것”이기 때문이었다.

 

문화예술계는 물론 사회전반에 걸쳐 여전히 강성했던 남성중심의 사고체계는 남자를 배제한 무대에서 남자를 연기하면서 남자보다 인기있는 그녀들을 용납할 수 없었다. 새로 들어선 권위주의 군사정부에선 더더욱. 여성국극은 어느새 “여자들만의 기괴하고 기형적인 사이비 예술”이 됐다.

 

영화 속 국극배우들의 회고는 남성중심의 한국사회가 어떻게 여성들의 문화활동과 노력을 거세해 나갔는지 명백히 진술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6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배우’보다 ‘여배우’로 호칭되는 이들과 ‘남성들이 바라봐주는 대상으로서의’ 아름다움에 대한 강박으로 대변되는 문화예술계 여성들의 지위로 귀결됐다.
 
# 왕자로 사는 것, 소녀로 사는 것

영화의 제목은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배우들은 제목처럼 왕자가 됐지만 본질은 분명 소녀, 여성이었다. 그녀들은 무대 위에서 뽐내는 남성성과 여성으로서의 자기정체성에서 혼란을 겪기도 하고, 상대 배우나 팬들과의 묘한 감정에서도 혼란을 느낀다. (여성 스타들과 여성 팬텀 사이에서 발생하는 감정과 관계의 모습들은 어느 퀴어 영화나 드라마보다 흥미로운 모습이다. 영화 속 인터뷰에 따르면 당시 마음과 눈이 맞은 이들은 한국을 떠나 지금도 친구처럼 연인처럼 함께 살아가고 있다고.)

 

결혼이나 출산처럼 여성에게 전통적으로 주어진 의무(?)에 굴복하기도 하고 이를 거부하거나 극복하거나 혹은 실패하는 과정도 영화는 놓치지 않는다. 예기치 못한 임신으로 무대를 떠나야했던 배우가 일흔이 훌쩍 넘어서야 뱉은 “결혼이 잘못이었다.”는 회고는 여성으로서, 배우로서 순탄치 않은 삶을 그대로 견뎌온 그녀들의 마음을 엿볼 수 있게 한다.

 

# 나이 들어도 늙지 않는 언니들

 

영화에 등장하는 국극 배우들은 대부분 고희를 훌쩍 넘겼다. 무대 위에선 여전히 우렁우렁한 목소리를 내고 역동적인 몸짓을 보이지만 무대 뒤에선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짚어가며 걷는다. 영화에 등장하는 최연소 배우는 67세의 인간문화재 이옥천 명창이다. 그녀는 여전히 선생님과 언니들에겐 막내다. 쇠락한 인기는 국극계의 고령화를 불러왔다. 현재 국극보존회를 중심으로 국극을 되살리려는 움직임이 진행되고 있지만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그저 국극이 좋았던 그 ‘언니’들은 나이 들었지만 여전히 늙지 않았다. 80이 넘은 나이에도 우직한 목소리로 무대를 호령하는 조금앵 선생이나 지금도 다섯 개의 개인 팬클럽을 보유한 박미숙 선생은 그 때처럼 무대 위에서 노는 것이 좋다. 국극 배우들과 가까이 지내고 싶어 사재 2억원을 바람처럼 날려버리고도 아깝지 않았던 왕년의 소녀팬들도 여전히 ‘언니들’곁에 머물고 있다.

 

수많은 팬들이 몰려들었던 그 시절 같은 국극의 영화는 어쩌면 다시는 없을지 모른다. 앞으로도 계속 어느 동사무소의 조그만 경로잔치 같은 무대만이 국극에게 허용될 수도 있다.(실제로 영화에는 동사무소 경로잔치에서 조금앵 선생 같은 국극계 최고의 배우들과 인간문화재 이옥천 명창이 공연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나이든 배우들이 모두 세상을 등지고 국극의 명맥이 끊어질 수도 있다.

 

(대단히 안타깝다는 마음을 전제하면서) 그러나 그러면 또 어떨까. 다만 이어졌으면 하는 것은 왕자를 기다리도록 강요된 지위와 역할을 과감히 걷어차 버리고 제 발로 왕자가 되어버린 그 언니들의 자유로움과 당당함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화려했던 지난날을 호출하고 아쉬워하는 추억담이 아니다. 그 멋있던 국극하는 언니들이 영화를 통해 부른 것은 지난 날, 영광의 시절을 살던 자신들이 아니다. 이제 다시 자유로운 모습으로 자신들을 닮을 ‘왕자가 될 소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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