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리뷰] 생명이 흐르는 강 - 최초의 4대강 다큐멘터리, 지율스님의 <모래가 흐르는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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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이 흐르는 강

- 최초의 4대강 다큐멘터리, 지율스님의 <모래가 흐르는 강>

글 성지훈(참세상 기자) / acesjh@gmail.com



지율스님은 지난 2004년, 천성산을 관통하는 고속철 터널공사로부터 천성산의 꼬리치레 도롱뇽을 지키기 위해 모든 곡기를 끊었다. 지율스님의 목숨을 건 단식투쟁에도 정부는 터널공사를 강행했다. 지율스님과 환경운동단체들이 낸 공사금지 가처분 소송도 대법원에 의해 최종 각하, 기각됐다.

제주 강정마을에서는 매일같이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폭 1.2Km의 한 덩어리 바위로 이뤄진 구럼비 바위에는 폭약이 설치되고 연산호군락지에는 콘크리트 덩어리가 쏟아진다. 강정 앞바다를 제 집으로 삼은 세계적 희귀어종 남방큰돌고래와 붉은발말똥게는 졸지에 집을 잃고 있다. 강정마을을 지키려는 평화활동가들은 몸으로 트럭을 막아 세우며 싸우고 있지만 해군기지 공사는 차근차근 진행 중이다.

단군 이래 최대의 토목공사였다던 새만금 간척사업과 부안의 핵폐기장 건설사업, 밀양의 농지들을 관통하는 고압 송전탑 건설 사업들도 그렇다. 그것들은 모두 저마다 다른 형태를 띠고 저마다 다른 목적으로 시작됐지만 그 속내는 같다. (어떤 것들은 인간도 포함한) 생명의 희생을 딛고 선 것. 그리고 2008년, 22조원의 예산을 들인 지난정부 최대의 국책사업, ‘4대강 정비사업’이 착공했다.






# 모래가 흐르지 않는 강

4대강사업 착공식 소식을 들은 지율스님은 산에서 내려와 낙동강으로 향했다. 스님은 물길을 따라 걸으며 공사현장과 변하는 강의 모습을 렌즈에 담았다. 스님은 그 순간을 “수해 예방, 수자원 확보, 경제 발전 등 정부의 화려한 구호와는 정반대로 내 눈이 보고 있는 것은 무너지고 파괴되는 섬뜩한 국토의 모습이었다.”고 기억한다. 





2009년에는 낙동강 지류인 내성천 상류, 영주에 댐공사가 시작된다. 댐건설로 내성천의 원앙, 먹황새, 수달은 사라져간다. 스스로 흘러 강을 정화하고 수Km의 백사장을 만들었던 모래들도 사라지고 있다. 소백산 줄기부터 흐르고 흘러 내성천까지 온 고운 모래는 영주댐에 가로막혀 더 이상 흐르지 않는다. 반면 남산을 6개나 쌓을 수 있을 만큼의 모래를 파낸 낙동강에 엄청난 빈공간이 생기면서 빨라진 물살은 내성천의 모래를 기하급수적으로 쓸어가고 있다. 


 



내성천의 모래는 야생동물들의 삶터로 작용하면서 동시에 흐르는 강물을 스스로 정화하는 역할을 한다. 고운 모래 사이사이에 있는 미생물들은 번식하며 오염물질을 분해한다. 내성천이 모래를 받아들이고 품고 흘려보내는 것만으로 낙동강은 두께 22미터짜리 정수필터를 갖는 셈이다.





사라지는 것은 모래뿐이 아니다. 영주댐이 완공되면 내성천을 젖줄삼아 땅을 일구며 살아온 마을의 일상이 통째로 사라진다. 지율스님이 영주댐 수몰지구로 들어서자마자 만난 것은 한 평생을 같은 마을에서 살아온 할머니의 감자밭이었다. 채 다 자라기도 전에 중장비에 헤집어져 드러난 감자. 어서 이주하라는 경고였다. 500년이 넘는 세월동안 같은 자리를 지켜온 당산나무도 팔다리가 잘린 채 어딘가로 실려 갔다. 





지율스님의 눈길은 내성천변의 모래 한 알, 호미자국보다 커다란 바퀴자국이 더 많은 감자밭, 곧 사라질 학교 운동장을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얼굴, 60년간 땅을 일구며 살아온 노파의 주름살을 모두 담아낸다. 그것은 모두 강과 함께 살아온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며 역사다. 그리고 동시에 댐이 물길을 막으면 곧바로 사라져버릴 것들이다.


# 강을 바라보는 우직하고 겸손한 시선

<모래가 흐르는 강>은 수려한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스님이 직접 가정용 카메라로 찍은 영상은 대부분 투박하고 이야기는 정돈되지 않은 채 혼란스럽게 펼쳐진다. 고저가 없는 편집은 긴장감을 제공하지도 않는다. 흥행한 다른 다큐 영화들처럼 기발한 아이디어나 톡톡 튀는 내레이션도 없다. 그러나 <모래가 흐르는 강>은 어느 다큐멘터리보다 성실하며 그 성실함을 기반삼은 묵직한 설득력을 지닌다.



스님은 전화번호부 몇 개를 겹쳐놓은 두께의 환경영향평가서를 직접 검토해 환경영향평가가 얼마나 엉성하게 이뤄졌는지를 찾아내고 영주댐 건설과 4대강사업이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준다. 무엇보다 4년여의 시간동안 꼼꼼하게 기록된 내성천의 모습이 다큐멘터리 최고의 미덕은 묵묵히 현장을 카메라에 담는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영화는 4대강사업이 누구의 잘못인지 드러내며 ‘범인’을 타박하지 않는다. (영화의 초입, 카메라는 공사장 바리케이드에 새겨진 특정기업의 로고를 꽤 오랜 시간 주목하지만 그 기업은 이 글에서 언급하는 대부분의 공사를 주도하며 한국사회 자본의 상징과도 같은 기업이다. 그 장면은 어느 기업에 대한 비판보다는 ‘자본’ 자체에 대한 응시로 이해하는 것이 더 적당할 것으로 생각한다) 





스님은 차라리 강바닥을 헤집어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죽이는 이 사태는 사회전체의 동조 혹은 묵인으로 인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 동조 혹은 묵인의 실체가 생명과 생태를 이해하지 못하는 필부필부의 어리석음이든, 개발이익을 기대하는 이기심이든, 무기력함과 패배감에 잠식당한 체념이든.





만듦새가 투박한 만큼 영화와 스님의 ‘진심’은 더 우직하게 다가선다. 화면을 통해 보인 것은 화려하고 현란한 기교가 아니라 피사체를 아끼고 염려하는 마음이다. 대상의 실체를 완벽히 이해하고 분석하겠다는 야심이 아니라 그 단면을 진심으로 바라보겠다는 겸손함이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는 그대로 영화의 주제의식과도 맞닿는다. 화려하게 꾸며내고 만들어내는 강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두어 스스로 생명을 잉태하는 아름다운 강. (영화 중반부, 정부의 대규모 식수사업을 알리는 뉴스와 벌목현장을 교차해서 보여주는 장면은 다소 뜬금없지만 동시에 영화의 장점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그것은 아마 카메라를 든 감독이 진리 앞에서 겸허해지는 스님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까.


# 강은 흘러, 다시

제주 강정마을에서 구럼비 바위를 지키는 송강호 박사는 다큐영화 ‘잼 다큐 강정’에서 “인도네시아 바다에 있는데 형광등 하나가 떠내려 와 건져보니, 번개표 형광등이었다.”고 말했다. 그것은 그대로 세계가 분절돼 있지 않다는 깨달음이다. 집 앞을 흐르는 실개천은 흘러 그대로 먼 바다의 파도가 되기도 하며 에베레스트 꼭대기에서 녹은 얼음물도 흐르고 흘러 어느 마을, 어느 집 화장실의 뒷물이 된다. 그렇게 세계는 이어져 있다.





지율스님이 마을에서 처음 만난 할머니는 트럭에 헤집어진 감자를 다시금 밭에 심는다. 할머니는 스님에게 바람이 불면 꽃도 떨어지고 타는 불도 연기처럼 사라지듯 사람도 이와 다르지 않게 자연히 나고 사라지는 자연의 일부라고 말했다. 삼라만상은 결국 상호부조하고 사라지며 다시 순환하는 대자연의 일부라는 이야기, 생명을 심고 거두며 다시 돌려주는 땅에서 보낸 오랜 세월이 준 지혜.





불교경전인 법구경은 “자연을 이용하기를 꿀벌이 꽃가루를 채집하듯이 하라.”고 가르친다. “꿀벌은 꽃의 아름다움이나 향기를 다치는 일이 없듯이 사람도 자연을 이용할 때 자연의 풍요로움이나 아름다움을 오염시켜서도 안 되며, 자연에게서 회복할 수 있는 자생력과 활력소를 빼앗아서도 안 된다.”며. 그것은 인간은 결국 자연의 품에서 살아가는 자연의 일부일 뿐이라는 가르침이다. 자연과 생태를 훼손하는 일이란 결국 제가 제 목을 죄는 어리석음이라는 가르침, 더 많은 꽃가루를 얻으려는 욕심으로 함부로 꽃을 대한 벌은 다시는 꽃가루를 얻을 수 없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내성천에 들어선 스님은 자신의 발을 바라본다. 흐르는 물과 모래는 천천히 스님의 발을 덮고 이내 스님의 발은 내성천 모래 속에 파묻힌다. 그것은 마치 인간은, 생명이 있는 모든 존재는 강과 모래의 품에서 그를 딛고 살아가는 것이라는 이야기와도 같았다.

4대강사업, 개발자본, 부실한 환경영향평가, 황폐해진 강변, 사라지는 마을. 1시간 30분 동안 보이는 것은 가슴 아픈 장면들에도 영화를 보고난 후 희망을 품은 것은 그 마지막 장면의 여운이었다. 그래도 다시 우리의 발을 품어주는 맑은 물과 고운 모래.

영화는 강에 기대 사는 ‘우리’가 다시 강을 찾아가는 일이 다시 강을 살리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강은 물리적 존재로서의 내성천과 낙동강을 향하는 발걸음 뿐 아니라 생명의 탯줄로서 존재하는 강을 깨닫고 느끼는 과정이기도 하겠다.



스님은 모래가 흐르는 강이 우리 곁에 있었음을 알았고, 그 모래가 흐르는 강은 다시 스스로 회복할 것이라는 믿음을 숨기지 않았다. “우리가 걸었던 아름다운 강이 어디에 있느냐”는 물음의 전염, 그것이 스님과 강이 지닌 희망의 씨앗이며 동시에 우리가 우리의 삶과 미래를 희망에 가까운 방향으로 끌고 갈 수 있는 동력이고 근거가 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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