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리뷰] 보통 사람들의 삶으로 엮어가는 일상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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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람들의 삶으로 엮어가는 일상의 역사


<세계 민중사 10부작, 2부> 캄보디아 민중사 엮어낸 김태일 감독 신작 - 웰랑 뜨레이

글 성지훈(참세상 기자) / acesjh@gmail.com



역사를 공부할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왕의 이름을 외는 일이다. 이를테면 임진왜란은 선조 때, 삼국통일은 문무왕이. 하는 식이다. 역사책은 임진왜란 당시 남산 밑에 살던 개똥이네 집이 어떤 봉변을 당했는지, 삼국통일로 인해 의주 살던 말똥이가 어떤 경위로 당나라 사람이 돼버렸는지 같은 사연은 기록하지 않/는다.

1980년 5월의 광주나 70년대의 캄보디아 내전도 그렇게 기록됐다. 역사책은 전두환 신군부의 정치적 의도나 크메르 루즈와 친미 정권의 대립을 ‘기록’했다. 그러나 광주와 캄보디아의 ‘기억’은 어떻게 남았을까. 80년 광주의 주민들은 새로운 군부가 어떻게 쿠데타를 일으키고 정권의 요직을 차지해 갔는지 일일이 꿰뚫고 있지 않았지만 국가가 어떻게 사람들을 억압했고 그들은 이에 어떤 방식으로 저항했는지 기억하고 있다. 캄보디아의 농부들은 크메르 루즈와 친미 정권 사이의 국제적 역학관계를 정확히 분석하고 있지는 않아도 전쟁과 폭력이 새긴 상흔이 자신들의 삶에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는 누구보다 정확히 알고 있다.

역사란 그렇다, 역사책이 아니라. 역사란 결국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일상이 켜켜이 쌓여 이루어진 것이다. 전쟁, 내란, 쿠데타, 학살, 기타 등등. 역사교과서의 굵은 글씨들은 그 일상의 축적이 낳은 효과이거나 혹은 성과일 뿐.



김태일 감독은 2010년, 다큐멘터리 ‘오월애’를 통해 80년에도, 지금도 “여전히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잡아냈다. 거창하고 위대한 역사로서의 광주를 ‘기록’한 것이 아니라 그 날들의 광주를 살갗으로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2년 후 감독은 다시 ‘살갗에 남은 기억’을 더듬으려 캄보디아로 향했다. ‘웰랑 뜨레이’


# 기록되지 않은, 그러나 실체에 가장 가까운

김태일 감독은 ‘오월애’를 시작으로 ‘세계 민중사 10부작’을 기획하고 있다. ‘웰랑 뜨레이’는 10부작의 두 번째 작품이다. 김태일 감독이 규정하는 민중사는 ‘역사 속에 존재하는 민중’을 살피는 것이 아니라 ‘민중들이 만들어낸 역사’에 방점을 찍는다. 역사가 의미하는 것이 시대가 움직여온 기록이라면 시대를 움직여온 ‘민중’이야말로 역사의 주체일 것이다. ‘민중’이나 ‘주체’라는 다소 거창한 표현을 사용하지만 이는 결국 할머니가 어린 손주에게 들려주는 옛날이야기와 할아버지의 패인 주름에 간직된 사연들이 곧 역사라는 가장 근원적인 인식이다.

김태일 감독은 내전 이후 캄보디아 민중들의 삶을 담아내고자 자신의 가족들과 함께 캄보디아 프농족 뜨레이 가족을 찾는다. 그러나 정작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캄보디아 내전에 별반 관심을 두지 않는 듯 보인다. 그보다는 차라리 뜨레이 가족의 일상을 묵묵히 담아내거나 그들과 함께 하려는 감독 가족(이후부터는 김태일 가족의 아들 이름을 따 ‘상구네’로 통칭)의 고역을 담아내려 애쓴다.



카메라는 영화 내내 뜨레이 가족의 일상, 고된 노동을 따라간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상구네 가족도 뜨레이 가족의 고된 노동에 동참한다. 카메라는(혹은 카메라를 들쳐 맨 상구네 가족은) 뜨레이 가족의 일상적 노동이 얼마나 육체적으로 힘겨운지, 그 힘겨운 노동에도 뜨레이 가족이 얼마나 궁핍하게 살아야 하는지, 그럼에도 이들이 어떻게 자연과 땅과 함께 살아가려 노력하는지를 목격하고 함께한다.


그러다보니 영화는 ‘내전 이후 캄보디아 민중의 삶을 재조명 한다.’는 기획의도가 무색할 지경이다(과장을 조금 포함해). ‘일반적’인 다큐멘터리의 작법을 따르자면, 사전 취재를 통해 내전을 비교적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내고 그들의 일상을 ‘적당히’ 촬영한 후, 내전을 회고하는 그들의 인터뷰를 감동적으로 ‘뽑아내’고 내전이 그들의 삶을 어떻게 피폐하게 만들었는지를 ‘그럴듯한’ 내레이션을 덧붙여 편집한다. 당시 사건의 자료영상 따위가 곁들여진다면 금상첨화다. 그러나 <웰랑 뜨레이>는 이 일반적인 작법을 따르지 않는다. 그건 아마 ‘민중사’를 이해하는 감독의 인식 때문일 테다. ‘사건’이 중심이 아니라 ‘사람’에 초점을 맞추는.




김태일 감독은 “민중의 평범하고 일반적인 삶이 ‘역사적 사건’과 뗄 수 없는 위치에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기록에 담기지 않은 이들, 역사적 사건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감내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다시금 역사를 구성하고 싶은”의도다.

뜨레이 가족은 상구네가 처음 찾아왔을 때 상구네를 경계한다. 상구네가 예수교를 전도하러 온 선교사인 줄 알았기 때문이다. 뜨레이 가족은 내전에 대해 이야기 하는 일도 기꺼워하지 않는다. 자급자족이 점차 힘겨워지지만 벼농사를 포기하지 않는다. 이 모든 상황은 결국 식민지 시절의 선교인들에게, 내전 당시의 양측 군인들에게, 독재정권의 권력에, 신자유주의 파고에 이들이 위축되고 배제돼온 역사를 증언하는 일들이다.


# 그들과 직면하기

<웰랑 뜨레이>가 다른 다큐멘터리 영화들과 구별되는 또 하나의 지점은 상구네 가족의 적극성에 있다. 다수의 다큐들이 대상과의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무던히 노력한다. 장 루슈 이후 작가가 대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상황을 촉발하는 시네마베리테가 다큐의 제작방식으로 주창되기도 했지만 여전히 많은 다큐는 ‘관찰자’로서의 거리두기를 통해 ‘객관성’과 ‘순수성’을 담보하려 한다.



그러나 <웰랑 뜨레이>는 관찰자의 위치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 영화의 반절은 차라리 영화 스태프인 상구네 가족을 담고 있다(<웰랑 뜨레이>의 촬영감독과 조연출은 김태일 감독의 부인인 주로미 감독, 촬영보조는 김 감독의 아들인 김상구 군이다. 김 감독은 “오래도록 다큐멘터리를 찍을 수 있는 방식은 가족과 함께 ‘가내수공업’ 방식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카메라의 시선은 ‘외부인’이자 영화 스텝으로서 뜨레이 가족을 바라보는 상구네의 시선이면서 동시에 프농족 뜨레이 가족과 관계 맺기를 시도하는 상구네 가족을 바라보는 시선이 된다. 이는 상황을 촉발하고 개입하긴 하나 여전히 관찰자의 지점에 머무르는 시네마베리테에서도 한 걸음 더 나가는 방식이다. 

이 다소 일반적이지 않은 작업방식과 시선은 감독이 그려내고 싶었던 민중사, 즉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보다 실체적으로 잡아낸다. 피상적이고 의례적인 말들을 카메라에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에 직접 살갗을 맞댐으로 그들의 이야기 (He’s Story)를 몸에 직접 기억하는 일. 이를 통해 <웰랑 뜨레이>는 역사와 시대를 사건으로 분절시켜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이어져온 역사와 이를 이끌어 가는 주체들의 실재하는 삶을 직면한다.


# “웰랑(안녕), 상구네”

캄보디아에 갔을 때 중학교 1학년이던 상구는 어느새 고등학생이 됐다. 김태일 감독은 캄보디아에서 보낸 6개월(김태일, 주로미 감독은 8개월)이 아이들에게 변화를 주었다 말했다. 캄보디아를 다녀온 상구는 타인과 관계 맺는 방식이 더욱 성숙해지고 자립심이 강해졌다고 한다. 

영화 속 프농족은 가난하지만 자신들의 문화와 삶에 자부심을 갖고 살며 노동의 가치를 존중한다. 땅을 사랑하며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신이 깃들어 있다고 여긴다. 자본이 침식해 땅이 외지인에 팔려나가고 삶의 터전이 관광지로 변해가며 흉작이 이어져도 이들은 새로이 벼이삭을 심는다.




김태일 감독은 아이들에게 이런 ‘삶의 방식’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경쟁과 승리만을 강요하는 한국의 교육현실이 알려주지 못하는 것들을 프농족과 함께한 일상에서, 그들의 역사와 노동에서 일깨워주고 싶었다고.

김태일 감독은 민중사 3부인 팔레스타인도 가족들과 함께 찾을 예정이다. (영화 속 중학생 상구는 “다시는 오지 않겠다.”며 아버지에게 원망의 눈빛을 보냈지만, 지금은 다행히 “다음 번 촬영도 함께하겠다.”고 약속했다) “세계사적 고통과 아픔을 바라보고 그 속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삶을 이어나가고 있는지 이해하게 된다면 아이들이 앞으로 무얼 하며 어떻게 살아갈지 더 잘 고민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다.

김태일 감독의 민중사 10부작은 앞으로도 계속 고통 받았고 소외됐고 희생당하면서 묵묵히 역사를 쌓아올린 민중들을 찾아 나선다. 역사책을 기록하는 높은 곳의 펜이 아니라 노동하고 울고 때론 웃으며 그럼에도 삶을 지속시키는 낮은 곳 사람들의 호미질에 주목할 것이다. 거기에는 점차 더욱 성숙해질 그의 아이들과 아내가 늘 함께 하며 감독 스스로도 10부작을 통해 만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들로 성장할 것이다.



완성까지 20년을 바라보고 있다는 이 거대한 프로젝트가 끝날 무렵의 상구네 가족이 기대된다. 세계 곳곳 민중들의 삶을 지켜보고 관계 맺으며 성장할 아이들도, 그 아이들의 성장을 바라보며 마찬가지로 더욱 성숙해질 감독 부부도. 그러니까 <웰랑 뜨레이>는 이 프로젝트의 시작과도 같다.

세계와, 역사와, 삶과 그러니까 결국 모든 살아가는 일과 나누는 이야기들의 시작인사.
“웰랑(안녕), 상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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