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이야기] 말하는 건축가, 정기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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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 건축가, 정기용

글 오예지 yeejio@naver.com




건축은 21세기 도시인들을 담아내는 공간으로 우리의 사유와 사고방식을 구현해내는 역할로서 존재한다.

현대 도시인들은 집 문을 열고 나가면 수많은 건축물 혹은 건물의 숲 속에서 숨쉬고 살아야만 하는 운명을 갖고 태어난다. 건축물은 땅이외에 유일하게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공간으로 우리에게 편안함과 안락함을 제공해 주지만, 도시를 가득 매운 건축물들은 아스팔트 구조물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와 먼지들로 우리의 몸과 정신을 피로케 하기도 한다. 때때로 건축물들은 도시의 상징이자 대표적인 조형물의 역할을 하기에 하나의 예술작품처럼 추앙 받기도 하지만, 오늘의 다큐의 주인공인 정기용씨가 바라보는 건축은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고, 생활방식을 변화시켜줄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건축을 말하고 있다.

정기용씨는 건축을 통해서 한 사회의 모순을 지적하고자 했으며 건축을 통해서 사람들의 삶을 보살피고 공간을 조직함으로써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내고자 했던 이상주의자이다. 일반적인 건축가들 사이에서는 이방인처럼 여겨졌던 미술학도 정기용씨는 건축계에 혜성처럼 나타나서 끝까지 삶의 가치들을 건축을 통해서 구현하고자 분투했던 분이다. 다큐멘터리 ‘말하는 건축가’는 2011년 정기용씨가 대장암으로 돌아가시기 직전까지의 행보를 카메라에 담아놓았다.



1. 목욕탕이 있는 ‘주민자치센터’

다큐멘터리에 처음 등장하는 정기용씨의 작품은 무주시 안성면에 있는 주민자치센터. 보통 우리는 건축가 하면 휘황찬란한 혹은 장엄한 건축물을 연상하는데, 정기용씨가 이곳 주민자치센터를 짓기 위해서 처음 시작했던 것은 외면적인 건축 설계가 아니라, 주민센터를 이용할 주민들과의 대화였다. 정기용씨는 다큐멘터리에서 건축을 “삶을 보살피고 공간적으로 조직해주는 것이기에 쓸 사람에게 물어봐야”한다고 말한다. 그것이 현재 안성면 주민자치센터 안에 목욕탕이 들어가 있게 된 사연이다. 일반적으로 농촌에 사시는 어르신들은 하루 종일 뙤약볕에서 농사일을 하신 후에, 집에 들어가면 졸졸 나오는 물로 근근이 샤워를 해야만 한다. 물이 펑펑 샘솟는 목욕탕은 보통 이러한 외지에서는 멀리 떨어져 있기에 일년에 한 두 번 연중 행사로 가야만 한다. 건축가가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서 건축설계를 시작했다면 아마 주민들의 필요를 채우는 목욕탕 보다는 건축의 외면적인 모습에 더 많은 신경을 썼을 것이다. 그러나 정기용 씨가 생각하는 건축은 형태와 기술이 아닌 삶을 보살펴주는 것으로서의 건축,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고 대안을 제시해주는 것으로서의 건축인 것이다.




일반적인 사고의 틀을 깨는 이러한 건축에 대한 접근방식은, 정기용 씨가 건축을 바라보는 시각의 다름에 기초한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건축가를 개발업자나 혹은 건축주의 하수인 정도로 생각하곤 한다. 그 반대편의 사람들은 건축을 일상적인 삶과 지나치게 동떨어진 자기만족적인 혹은 자기표현적인 도구로 생각한다. 하지만 정기용씨가 생각하는 건축가란 집을 짓는 사람이자 문화를 생산하는 사람이며, 미술과는 구분되게 우리의 일상에 파고들어 있는 것이 건축이기 때문에 한 시대의 모순을 공간적인 구현을 통해 해결해나가고자 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한 건축평론가에 의하면, 현대건축은 건축을 지나치게 숭배하여 “건축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는 신화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반면, 정기용 씨는 “건축의 한계를 알고 건축가가 누구에게 봉사해야 하는가에 대해 실천적으로 보여준 분”이라고 말한다.


2. 기적의 도서관

정기용씨의 건축에는 사람에 대한 보살핌과 함께 사랑이 담겨있다. 정기용 씨가 제주, 정읍, 순천 등에 지은 어린이 도서관인 ‘기적의 도서관’을 보면 기존에 조용하게 책만 보는 곳으로서의 도서관이 아닌 자유롭게 놀 수 있는 공간을 느낄 수가 있다.







이 다큐멘터리를 보면, 우리가 그 동안 그냥 지나쳐왔던, 혹은 외견상으로만 평가해왔던 건축물 안에 이렇게나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것을 알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현대의 많은 건축물들이 기술이나 형태 등 미적인 부분들에 많이 치우쳐있다면, 정기용씨의 건축물 속에는 건축의 본질인 인간의 문제가 항상 깃들어 있으며, 끈질기게 그 본질을 붙들고자 노력한 흔적들을 엿볼 수가 있다.

정기용 씨는 다큐멘터리 중에 현대의학을 토목사업에 빗대어서 “길이 없으면 길을 내고, 도로를 내서 다리를 건설하고 장애물을 떼려 부수기 때문에 현대의학은 토목을 닮은 것 같다”고 말한다. “거친 토목이 우리가 이야기 하는 보통 토목공사라면, 현대의학은 정교한 토목공사와 같다”는 것이다. 많은 건축들이 건축의 본질에서 벗어서 이러한 토목사업처럼 진행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가 꿈꾸는 건축은 “사람이 사는 방식을 규정하는 것이 아닌 포용하는 역할”로서의 건축을 말한다. 그의 건축이 때로는 현실과 동떨어져있고, 때로는 볼품없다고 여겨지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그의 건축에는 자연을 거스르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공존하며, 인간을 거스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포용하며 보듬어 주는 따스함, 인간에 대한 가치가 담겨있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일으키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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